“빈국 아이들에 희망, 의사보다 이 길이 빨라”2007년 페루 지진현장 목격유엔 완벽 구호시스템에 감동ODA자금 활용 자리 매력최초의 의사 연구관 되었
경기 성남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만난 오충현 보건의료연구관은 “의사가 된 옛 동료들은 적은 월급을 받지만 다른 이들을 돕는 나를 오히려 부러워한다. 다만 아내가 옛 동료들의 아내를 부러워할 뿐”이라고 농담했다. 오 씨의 아내는 그가 이 길에 뛰어들 수있었던 든든한 후원자. 그가 KOICA 협력의사로 페루행을 택할 때도, 이카 시의 강진 현장에 가는 걸 망설일 때도 아내의 “정말 어려울 때 도와주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말이 힘이 됐다. 성남=홍진환 기자
오 씨는 가톨릭의료원 부천성가병원의 레지던트 전공의 3년차인 2004년 병원 인근의 외국인 진료소를 찾았다. 의료보험이 없어 고통 받는 외국인 근로자를 1주일에 한 번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만난 환자로부터 페루에 KOICA 협력의사(대체복무)가 파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삶에 KOICA가 처음 다가온 순간이었다. 오 씨는 국내에서 편하게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를 포기한 채 2005년 페루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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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놀랍도록 체계적인 긴급구호 시스템을 목격했다. 그들은 매뉴얼에 따라 치료와 영양관리, 식수 확보 작업을 착착 진행했다.
“우리 구호팀은 완전히 아마추어였어요. 부끄러웠습니다. ‘나도 저렇게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선택이 쉽지만은 않았다. 2008년 귀국하자 가톨릭의료원 임상교수 자리가 났다. KOICA 보건의료연구관의 월급은 그가 전문의로 개업해 벌 수 있는 돈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내 삶의 목표는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겁니다. 전문의로 아무리 많이 벌어도 10억 원을 모아 그들을 돕기 어려워요. 반면 보건의료연구관은 300만∼3000만 달러의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활용할 수 있죠. 내 꿈을 이루는 데는 보건의료연구관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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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한 가정이 10명을 낳아 3명은 죽고 딸 4명은 생계를 위해 당나귀와 바꾸고 아들 1, 2명만 교육했어요. 아이를 신의 축복으로 생각하던 이들을 설득해 결국 아이를 적게 낳아 잘 키우는 것이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삶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이티 강진 때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 파견된 그는 고통받는 이를 더 도와주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며 고개를 숙였다. 천생 다른 이들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이 봉사활동을 하는 숭고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는 얘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 일로 항상 가슴 ‘콩콩’ 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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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동아닷컴 뉴스콘텐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