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대비하지 못했기에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공군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북의 도발로 시작된 전쟁이긴 하지만 우리는 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남북 분단, 민족 분단의 비극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와 달리 북의 처지에서는 중공군이 정권을 부지시켜준 은인이었다. 중국 측의 공식 통계로 6·25전쟁에서 전사한 인민지원군(중공군)은 18만3108명이다. 미군 전사자 5만4246명과 유엔군 전사자 2143명을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많은 수다. 중국은 6·25를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을 도왔다는 의미이다.
이달 초 중국을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귀로에 중국 선양 역에서 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항미원조열사능원을 찾아 참배했다. 이곳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중국 인민지원군 묘역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 후 중국을 방문한 것은 모두 5번이지만 이 묘역을 참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길지 않은 방중 일정에다 건강 상태까지 감안한다면 결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행보였다. 그는 왜 이곳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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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민족의 운명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 북핵 문제에 이어 천안함 사태까지 불거진 지금, 또다시 중국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대국(大國)’의 역할에 다가서고 있다. 중국이 쉽게 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종국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국익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으로 밝혀졌을 때 북을 응징하고, 나아가 북핵 폐기까지 이끌어내는 게 중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쇼까지 마다 않는 북한의 김 위원장을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