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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섹션 피플]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

입력 | 2010-05-13 03:00:00


“창업 1, 2년 된 초기벤처에 집중투자”
네오위즈 창업 벤처 1세대…3년간 개인돈으로 투자 수업
매월 50여건 아이디어 검토


 사진 제공 본엔젤스

최근 금융권에서 일하던 A 씨를 3년 만에 만났다. 유명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월급쟁이였는데 갑자기 온라인게임 회사를 창업했다고 했다. 실패 확률이 높기로 유명한 업종이었다. 걱정이 돼 “돈은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다.

A 씨는 ‘본엔젤스’라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다. 그는 금융권 경력이 있었고 동업자는 게임개발 경력이 긴 전문가이긴 했지만 둘 다 창업은 처음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국내 회사는 그동안 없었다. 자프코나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외국계 벤처캐피털만 이런 일을 일부 해왔을 뿐이다.

지난달 창업한 본엔젤스의 장병규 대표(사진)를 이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블루홀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났다. 블루홀스튜디오는 장 대표가 직접 창업한 온라인게임 회사다.

○ 벤처기업은 만들어지는 것


“벤처기업에 가장 중요한 건 창업 초기 1∼2년을 버티는 일인데 누구도 그 시기의 벤처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한국엔 벤처캐피털은 있는데 투자할 벤처기업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투자할 만한 기업’이 없다는 얘기다. 장 대표에게 이 말을 꺼냈더니 “그게 바로 우리가 본엔젤스를 만든 이유”라며 이렇게 답했다. 그는 1996년 스물세 살에 네오위즈를 창업한 ‘닷컴벤처’ 1세대다. 2005년 ‘첫눈’이라는 검색엔진 개발회사를 창업했고 2006년 NHN에 이 회사를 350억 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창업 1년을 버티고 살아남는 기업은 전체 벤처기업의 10분의 1도 안 되는데 이들에게 이 시기를 버텨가는 데 필요한 돈은 단돈 5000만∼1억 원”이라며 “대부분의 국내 벤처캐피털은 이런 ‘푼돈’을 투자하기보다는 한 번에 20억 원 이상을 투자하려 든다”고 말했다. 그는 “기왕이면 가장 위험한 초기 3년을 넘긴 벤처기업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본엔젤스는 여기서 기회를 찾았다. 이런 적은 돈을 안정적이지 못한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성공 확률은 낮아도 수익률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투자가 실패하면 큰일이다. 장 대표는 이를 막기 위해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한 지난달 이전에도 지난 3년간 개인 돈으로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해 왔다. 일종의 ‘수업’이었다. 이 가운데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는 KT와 소프트뱅크 등의 벤처캐피털로부터 45억 원 규모의 3차 라운딩(투자유치)까지 마쳤고 ‘스피쿠스’라는 온라인 영어교육회사는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성공의 경험’이 쌓인 것이다.

장 대표는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안정적으로 투자하려는 기존 벤처캐피털의 정책은 그동안 국내 창업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젊은 사람들이 기술로 도전하는 소프트웨어 벤처 대신 대기업 출신 중간 간부가 ‘일감’을 들고 나와 세우는 ‘대기업 하청 공장’ 형태의 제조업 벤처만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09년 국내 정보기술(IT) 관련 벤처기업 투자는 전체 벤처 투자의 21.5%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IT 벤처 투자는 41.3%다.

○ 벤처기업의 페이스메이커


본엔젤스는 매월 50여 건의 창업 아이디어를 검토한다. 그리고 장 대표를 포함한 세 명의 파트너가 이 가운데 창업자 또는 창업 희망자 대부분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창업하지 말라”는 조언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성공 가능성은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낮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일단 투자를 결정하면 여러 도움을 준다. ‘투자 계약서’를 쓰고 창업을 둘러싼 법률문제에 대해 조언하며 ‘비즈니스 언어’에 창업자가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이 과정을 거친 벤처기업은 향후 더 큰 투자를 받기 위한 경쟁력이 생긴다.

그는 “사업은 마라톤과 같아서 단숨에 결판나지 않고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꾸준하게 뛰는 게 중요하다”며 “본엔젤스는 이 긴 마라톤을 막 시작한, 경험 부족한 선수를 위한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