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영화 - 문학 추리서사 도입 붐… ‘추리서사’ 학술대회도
영화 ‘마더’(왼쪽), ‘추격자’, 드라마 ‘아이리스’(오른쪽), 한강 씨의 소설 ‘바람이 분다’, 김인숙 씨의 소설 ‘소현’ 등 추리서사를 도입한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새로운 추리물 창작 이어져
연쇄살인 등 범죄 통해
당대 사회문제 접근 매력
지난해 KBS 2TV가 방영한 드라마 ‘아이리스’는 아이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막판까지 흥미를 고조시켰다. 올해 같은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추노’도 추노꾼들이 노비를 추격하는 과정에 좌의정의 음모를 밝히는 과정이 더해지며 박진감을 더했다. 화려한 액션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시청자를 흡인한 이야기의 기본 틀은 ‘추리’였다.
○ 미드-일본소설 영향 ‘부활’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 단절되다시피 했던 추리 문화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와 일본 추리소설이 인기를 끌며 되돌아온 추리서사의 인기는 이제 새로운 추리물 창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은 20, 30대 젊은 작가들이 모인 창작모임. 올해 7월 출간을 목표로 세 번째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을 준비하고 있다. 부회장인 정명섭 씨는 “전업작가도 있지만 대부분 직장인으로, 한 달에 한두 차례 추리소설을 읽고 분석하거나 작법을 연구하는 모임을 가진다”고 말했다.
박광규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은 “2000년대 초까지는 국내 창작을 포함해 전체 추리소설 출판이 100종 정도였으나 최근 2, 3년 사이 약 300종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 “혼자서 몰입하는 시대에 맞아”
고려대 한국학관에서 7, 8일 대중서사장르연구회 주최로 ‘추리서사와 한국대중문화’ 학술대회가 열렸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추리서사의 역사와 현황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8일 ‘일본추리소설의 수용과 한국추리소설의 현황’을 발표한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추리소설은 번역물조차 부족했지만 4, 5년 전부터 외국의 번역 추리물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를 읽은 젊은 층이 작가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미 단국대 강의전임교수는 논문 ‘과학수사의 전조, 심리탐구: 2000년대 추리 드라마의 특징’을 통해 ‘변호사들’ ‘부활’ ‘마왕’ 등 2000년대 후반 대거 등장한 추리드라마를 정리 분석했다.
토론자로 나선 고선희 서울예대 겸임교수는 “2005년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처음 시작되는 등 TV 시청 환경이 변하면서 혼자서 몰입해 볼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변화가 반영됐다. ‘인터랙티브(상호반응) 스토리텔링’을 지향하는 디지털 미디어에 수수께끼 구조의 추리서사는 매우 적합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특히 살인사건과 범죄를 통해 세상의 밑바닥 이야기와 당대 사회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 씨는 최근 순수문학 작가들의 추리서사 이용 경향이 “순수소설이 읽기 어렵다거나 서사가 없어서 지루하다는 평가에 대해 작가들이 대중을 생각한 결과”라며 “연쇄살인범의 등장이나 사회지도층의 죽음 등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 추리서사의 뿌리는 고대 수수께끼 설화▼
‘장화홍련전’ ‘박문수전’서도 등장
구한말 ‘쌍옥적’ 추리소설 효시
고대 설화 가운데는 하늘이 수수께끼를 내고 주인공이 이를 해결하는 식의 수수께끼 설화가 자주 등장한다. 시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거나 파자점(破字占) 풀이, 꿈 해몽 등 추리 과정이 이어진다. ‘장화홍련전’ ‘박문수전’ 등 조선 후기 고전소설에는 마을 부사나 암행어사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풀어나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추리서사와 한국대중문화’ 학술대회에서는 한국 추리서사의 뿌리를 고대 설화에서부터 찾거나 추리서사의 역사적 흐름을 밝히는 논문들이 발표됐다.
논문 ‘설화에 나타난 추리 모티브의 유형과 의미’(오윤선 한국교원대 교수) ‘조선 후기 서사의 추리모티브-범죄와 해결 과정을 중심으로’(이주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단 연구원)는 고대 설화와 조선 후기 고전소설 속 추리모티브를 분석했다.
김종수 고려대 강사는 ‘일제 식민지 탐정소설 서적의 현황과 특징’에서 당시 탐정소설 현황을 분석했다. 1911∼1944년 발간된 추리소설은 번안소설과 전집류를 포함해 모두 45종에 이른다. 재판은 물론 3판, 6판을 찍을 정도로 인기를 모은 작품이 많았다.
1930년대는 추리소설의 전성기였다. 김내성의 ‘마인’ ‘태풍’,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등이 출간됐다. 추리서사의 인기는 광복 이후에도 스릴러 영화와 추리소설 양쪽에서 이어졌다. 1980년대까지 스포츠신문 연재와 공모전을 통해 추리소설 창작이 활발했으나 폭력적, 선정적 내용이 많아지면서 1990년대 추리서사는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