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월 6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집권 후 다섯 번째 중국 방문이 5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만찬 및 정상회담 개최로 정점을 맞았습니다. 3일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6일까지 4일째 중국에 머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구가인 앵커) 이번 방중은 북한이 처한 안팎의 난국을 돌파하려는 김 위원장의 승부수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가 이번 방중을 통해 무엇을 노렸는지, 그 목적은 얼마나 달성된 것인지 등을 평가해 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정치부 신석호 차장이 나와 있습니다.
광고 로드중
(신 차장)예. 김 위원장의 방중은 천안함 46용사의 장례식이 치러진 4월 29일로부터 4일 뒤인 3일 전격적으로 실행됐습니다. 김 위원장은 당초 3월 말 방중할 예정이었지만 한국과 미국이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북한 공격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후로 일정을 미룬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방중 카드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려 천안함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국면전환 의도가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은 폭발 당시의 충격으로 함체에서 떨어져 나간 연돌에서 어뢰의 화약 성분을 검출했고 침몰 해역에서 수거한 알루미늄 파편들 가운데 일부가 어뢰 파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번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6일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했습니다.
(구 앵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요. 그 뒤, 불과 사흘 만에 시작된 김 위원장의 방중이 한중관계를 크게 흔들어놓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 차장) 그렇습니다. 한중관계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전략적 동반자관계로까지 격상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과정을 보면 중국에게 북한은 6·25전쟁에서 피를 함게 나눈 혈맹 관계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한중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우리 측에 알려주지 않았고 이후 3일 만에 김 위원장이 방중하자 정부 당국자들이 당혹스러워하며 불쾌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외교부와 통일부 등이 중국 측에 정부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그러나 향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천안함 사건 등을 국익에 맞도록 처리하는데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보고 감정적 대응보다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 앵커) 김 위원장은 베이징에 입성하기에 앞서 다롄과 톈진을 방문하며 마치 중국의 개혁 개방을 학습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광고 로드중
(구 앵커) 김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파격적인 노출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건재를 국제사회에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악화된 건강상태가 노출되는 등 역효과도 컸던 것 같은데요.
(신 차장) 과거 네 차례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극비리에 이뤄졌습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떠날 무렵 도착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단둥 시민들이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던 오전 5시 경 특별열차를 타고 단둥역에 도착하는가 하면 다롄에서는 호텔을 드나드는 장면을 언론 카메라에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5일 승용차를 타고 줄지어 베이징의 장안대로를 질주하는 북한 대표단의 모습은 전례가 없는 당당한 행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김 위원장이 왼쪽 다리를 끌며 걷고 왼손을 거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육안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위원장 일행의 행렬 때문에 통행을 제한당한 한 베이징 주민은 남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독재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박 앵커) 북한이 중국과 6자회담 참여 여부를 조율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 할 것 같은데요, 천안함 후속대책을 단단히 하려는 한미와 북중의 불협화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 차장,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