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빌라에는 달랑 네 가구가 산다. 한 층에 한 집이다. 어제는 집에 17명을 초대해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내게 아랫집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평소의 소음 문제라는데 하필 그때 왔다. 손님이 도착해 정신없는 상황임을 설명해도 그녀는 가질 않는다. 단독주택이 아니라면 이해해야 한다고 다독였던 시간이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화목할 수 있는 네 가구가 이렇게 토닥거린다.
예전에 나도 그런 고충을 말한 적이 있다. 아파트에 살 때 늘 오후 11시에 피아노를 치는 아랫집의 안주인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늦게 오시나 봐요”라고 했더니 아랫집 아주머니가 “아뇨. 아이가 치고 싶어 할 때 치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공동체 의식이다. 결국 그녀는 경찰에 신고한 다른 주민에 의해 곤욕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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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갖추면 깔보이는 슬픈 현실
아래층 일은 사실 애교 수준이다.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류는 강한 것에 약하고 약한 것에 강한 사람들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한다.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면 그만이고, 아무리 뒤져봐야 없다고 말하면 세상은 그들을 잘 뒤지려 하지도 않는다. 나이를 감안해서 그동안 존중했던 사람이 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어느 회사의 사장인데 나를 만만해한다. 알면서도 5개월을 참아줬더니 더 숙이라는 듯 요구가 더욱 많아진다. 아직도 고치지 못한 성격 탓에 어느 날 조목조목 따지며 들이받았더니 미안하다며 다음 날 친히 전화까지 걸어왔다.
왜 그렇게 사나. 왜 서로를 더 모질게 만들어야만 하나. 조금만 뒤돌아보면 내가 공격하는 그 상대가 내 형제의 모습이고, 세상에 치인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서 씁쓸하다. 후진국에 가서 돈 자랑을 하다가 망신당하는 졸부 짓을 국내에서 매일매일 서로 해대는 느낌이다. 이제는 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요즘 국격이니, 국가 브랜드니 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외국인에게 전해지는 첫 이미지가 국가 브랜드 중 하나라고 한다. 맞다. 그러나 제발, 부디 자국민끼리 기운 빼는 행동부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상대방이 져야만 내가 이긴다는 식의 계산법은 제발 지웠으면 좋겠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윈윈(win-win)을 말하면서, 물고기만도 못한 기억력인지 본인의 실제 행동은 거리가 멀다. 내가 기운 내서 타인을 살리고 타인을 살린 보람에 나도 다시 사는 기운이 나는 세상. 그게 나의 이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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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氣살려주는 세상은 꿈일까
커뮤니케이션학에 자기표현이라는 용어가 있다. 상대를 존중하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행위이다. 참거나 대드는 자세는 장기적인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착한 것의 강점은 강인함과 균형을 맞춰야 가능하다. 플라톤의 ‘국가’ 1권에서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한 것같이 부정한 자들이 끝내 힘을 가지면 부정한 방법으로 결국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
착하다고 불리는 사람은 다르다. 어렵사리 부정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위치에 겨우 올라서도 부정한 자를 처벌하지 않고 용서해 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정한 자는 착한 자를 다시 전복하고 힘을 가져 착한 사람을 세상에서 치워내기 시작한다. 강한 자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고 약한 자에게 모질지 않은 세상. 그거 만들자. 우리 다같이.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