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10만 년 이상의 환경감시와 관리를 필요로 하는 고준위폐기물이다. 원전에서 사용하고 난 연료와 이를 재처리한 후에 나오는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하는 일이 아직까지 인류의 숙제로 남았다. 고준위폐기물 안전 관리는 유럽이 먼저 나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그중 단연 앞선 프랑스는 2005년부터 지하실험실을 만들어 고준위폐기물 영구 처분을 위해 빈틈없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동부지역 부르에 있는 고준위폐기물 지하실험실을 방문해 연구 상황을 샅샅이 살펴본 적이 있다. 실험실은 지하 490m를 직선으로 파고들어가 지름 5m, 총 535m 길이로 이어지는 미로 같은 동굴이다. 벽면마다 크고 작은 구멍을 뚫고 원전 폐기물을 생활환경과 철저히 단절시키는 다양한 기술적 방법을 비교 검토했다. 250여 명의 인력이 암질 성분 및 지하수 흐름 조사, 암반굴착 방법 및 장비 개발, 방사성물질 차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열린 원전 활성화 국제회의에서 각국의 원전 안전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자고 제안한 바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경쟁에서 한국에 패한 후 나온 발언이어서 프랑스 원전의 브랜드 이미지를 안전성으로 삼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번에 다녀온 부르도 원전 안전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프랑스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시험무대라고 할 수 있다. 원전 안전의 열쇠를 풀려는 부르 실험실의 시도가 성공할 경우 프랑스는 세계 원전산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경북 경주시에 중저준위폐기장을 건설하고 있다. 원전에 보관하는 고준위폐기물이 2016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르지만 현재로선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고준위폐기물은 위험하다는 막연한 걱정보다는 과학적인 검토와 전문가의 지질연구 및 조사를 거쳐 국민의 공감대 속에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전 르네상스를 주도할 수 있다.
이재환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