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게임/마르쿠스 베네만 지음·유영미 옮김/334쪽·1만4800원·웅진 지식하우스
해오라기가 잉어를 사냥하는 법은 독특하다. 해오라기는 풍족했던 과거에 대한 잉어의 욕망을 이용해 사냥을 한다. 사진 제공 웅진지식하우스
일본의 해오라기는 공원의 연못에 있는 잉어를 사냥할 때 놀랍게도 인간이 흘린 빵조각을 이용한다. 연못 속 잉어가 ‘곱게’ 사육될 때 먹던 사료에 대한 욕망을 노린 전략이다. 잉어는 과거의 풍족한 한때를 떠올리며 수면에 떠다니는 빵조각을 잽싸게 문다. 물가에 있던 해오라기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잉어를 집어 문다. 해오라기는 빵조각이 자신과 먼곳으로 흘러가면 다시 물어다 놓기도 하고 다른 새가 빵조각을 먹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몰락한 귀족의 욕망을 노리는 것’이다.
영국의 북방족제비는 먹잇감인 굴토끼보다 느리지만 사냥에는 문제가 없다. 굴토끼는 몸집도 더 크기 때문에 북방족제비가 눈에 띄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몇 번만 깡충깡충 뛰면 도망갈 수 있다. 북방족제비의 사냥전략은 ‘허점 보이기’. 토끼가 볼 수 있는 먼 지점에서 혼자 재주를 넘고 꼬리를 잡고 뱅뱅 돌기도 하고 풀밭 위를 구르며 지그재그로 마구 뛰어다닌다. 토끼는 북방족제비의 이상한 행동에 풀 씹는 것마저 중단한 채 쳐다본다. 미친 듯한 북방족제비 구경에 넋이 나간 사이 그가 접근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족제비가 토끼의 목덜미를 무는 순간이 돼서야 나머지 구경꾼 토끼들은 쏜살같이 도망친다.
독일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동물들의 생존능력으로 얘기를 시작해 시나브로 그들이 벌이는 생존게임의 현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글 솜씨를 보인다. 각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동물의 특성들이 마치 추리소설의 복선 같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