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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세계인의 술로/2부]스카치위스키, 품질이 최고의 경쟁력

입력 | 2010-03-26 03:00:00


“스카치위스키는 왕실의 술” 특정계층 타깃 럭셔리전략
크리스털 명가와 손잡고 고가-한정판매로 고객 유혹
‘당신은 특별하다’ 느낌 줘


업체들 스스로 엄격한 규제
라벨에 현혹적 문구 못쓰게


 ‘스카치위스키를 맛보는 것은 곧 역사를 마시는 것이다.’ 스카치위스키 업체들이 연합해 자발적으로 만든 위스키 홍보관인 ‘스카치위스키 헤리티지 센터(SWHC)’를 찾은 관광객들은 이 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3500여 병의 스카치위스키가 전시된 전시실에서 다양한 위스키를 시음하고 있는 관광객들. 사진 제공 SWHC

《“‘스코틀랜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뭔가요?” 16일(현지 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위치한 ‘스카치위스키 헤리티지 센터(SWHC)’를 찾은 기자에게 수전 모리슨 디렉터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잠시 고민하던 끝에 “왕실과 위스키”라고 답하자 그녀는 “그것이 바로 스카치위스키의 힘”이라며 웃었다. 모리슨 디렉터는 “스카치위스키의 가장 큰 자랑은 수백 년 역사와, 그 역사에 기반을 둔 높은 품질”이라며 “스카치위스키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술이 아니라 역사와 권위를 마신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술도 ‘명품’이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스코틀랜드를 지배했던 스튜어트 왕조의 흔적은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당시 제조법이 완성된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 식음료 수출의 25%를 차지한다. 스코틀랜드에선 경제활동 인구의 18%가 위스키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만큼 비중이 높다.

스코틀랜드 왕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꼽히는 에든버러 성 바로 앞에 SWHC가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위스키의 이미지가 왕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1시간여 동안 스카치위스키의 역사와 제조법을 둘러본다. 투어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3500여 병의 스카치위스키가 전시된 전시실에서 이뤄지는 위스키 시음.

SWHC 측은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최고급 위스키의 향과 맛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세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며 “이것이 바로 스카치위스키가 지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카치위스키 업체들은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 매캘런의 매슈 터너 글로벌마케팅 매니저는 “럭셔리 마케팅을 통해 과거 왕가에서 마시던 술을 현재에 마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캘런은 올해 초 프랑스의 크리스털 명가 라리크(LALIQUE)가 제작한 병에 57년산 매캘런을 담은 제품을 선보였다. 오크통 안에서 57년간 숙성시켜 400병만 한정 제작한 이 술은 병당 1만5000달러(약 1710만 원)다.

 물과 곡물로 빚어진 위스키는 최소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쳐야만 ‘스카치위스키’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다. 각 업체는 표준화된 품질관리를 위해 숙성이 시작된 오크통에 대한 점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스카치위스키협회

또 다른 스카치위스키 업체인 글렌피딕도 50년산 위스키 500병을 한정 판매하며 가격을 1만 파운드(약 1700만 원)로 책정했다. 터너 매니저는 “명품 브랜드와 협력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의 고객을 우리의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며 “이 같은 전략은 스카치위스키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자신은 특별하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곳곳에 위치한 스카치위스키 증류소가 운영하는 ‘증류소 투어’ 프로그램도 럭셔리 마케팅의 또 다른 축이다. 관광객들은 위스키 제조 과정을 둘러보고 시음할 수 있다. 또 수백 년 된 고성(古城)에서 숙박하며 넓은 초원에서 골프를 즐기는 기회도 갖는다. 매캘런의 증류소 투어를 담당하는 알렉 레이드 매니저는 “증류소 투어를 경험하고 나면 스카치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며 “술과 함께 역사와 전통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가의 술, 역사의 술을 자처하는 스카치위스키는 제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이 ‘명품’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 품질 없이는 명품도 없다

하지만 단순히 값이 비싼 제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명품이 될 수는 없다. ‘럭셔리 마케팅’의 이면에는 스카치위스키 제조업체들의 치열한 품질 개선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중심에는 55개 스카치위스키 제조업체가 모여 1917년 결성한 스카치위스키협회(SWA)가 있다. SWA는 정기적으로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를 점검한다. SWA 측은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돼야 한다는 조건을 지키고 있는지 보려는 것”이라며 “품질이 낮은 스카치위스키가 시장에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스카치위스키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조법이 더 엄격하게 개정됐다. 지난해 11월 공표된 스카치위스키법 개정안은 병에 붙이는 라벨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개정안은 △생산 지역과 위스키 종류를 소비자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더 명확히 명시해야 하며 △‘순수하다(PURE)’처럼 측정할 수 없는 현혹적인 문구를 사용할 수 없고 △라벨에 명시된 증류소에서 완전히 증류되지 않았다면 그 증류소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또 스카치위스키를 제조법에 따라 더 세분화해 싱글 몰트(단일 양조장에서 보리를 원료로 양조), 싱글 그레인(단일 양조장에서 옥수수 호밀 등으로 양조), 블렌디드 몰트(여러 싱글 몰트를 혼합), 블렌디드 그레인(여러 싱글 그레인을 혼합), 블렌디드(여러 몰트와 그레인을 혼합) 등 5개 범주로 표기하도록 했다.

주목할 점은 법을 공포한 주체는 영국 정부였지만 규제의 당사자인 SWA가 지속적으로 규제를 강화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는 점이다. 폴 월시 SWA 회장은 “이번 개정안은 소비자들에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스카치위스키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 위스키 전문가들 조언
“막걸리, 단기간에 성공하려 말고 길게 봐라”
“한국 관심 계층부터 잡아야”

영국과 미국, 유럽 대륙에서 주로 소비되던 스카치위스키는 1990년대를 전후해 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전 세계로 시장을 넓혔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스카치위스키 전문가들에게 역시 세계화를 꿈꾸고 있는 막걸리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대규모로 시작해 단기간에 성공을 거두려 하기보다는 다소 더디더라도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매슈 터너 매캘런 글로벌 홍보담당 매니저는 “매캘런은 신흥시장에 진출할 때 치밀한 시장 분석을 통해 위스키에 관심을 가질 만한 소비층을 추려낸 뒤 그들을 공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며 “막걸리 역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계층을 찾아내 그들에게 막걸리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우수한 품질은 기본”이라며 “와인이나 위스키 잔과 차별화되는 막걸리 전용 술잔을 함께 보급한다면 소비자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카치위스키협회(SWA)의 데이비드 윌리엄슨 홍보담당 매니저는 “다양한 협회들이 난립해 있다면 하루 빨리 하나로 단일화해야 한다”며 “단일화된 협회의 인증을 받은 술이라는 점을 함께 알린다면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성에 기반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있었다. 스카치위스키 헤리티지 센터(SWHC)의 디렉터 수전 모리슨 씨는 “스카치위스키도 막걸리처럼 생산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며 “다양한 제품 가운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을 고르는 체험을 하게 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WHC를 찾은 관광객들은 하이랜드 로랜드 스페이사이드 아일레이 등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스카치위스키 생산지역 네 곳을 대표하는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지역별로 향과 맛이 제각각인 위스키를 번갈아 시음하면서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호에 잘 맞는 위스키를 알게 된다.

모리슨 씨는 “조사 결과 투어를 마친 관광객의 55%가 센터에 마련된 위스키 판매소에서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카치위스키처럼 제품이 다양한 막걸리도 이런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에버딘=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