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엔 사케가 있어야” 세계입맛 잡은 패키지 마케팅
새로운 소비층 창출
매년 음식 곁들인 시음행사
병모양은 외국인-여성 취향
일식 세계화 전략
“일본산 재료라야 참맛” 홍보
농수산물-사케 동반수출
일본 전국에는 1980개나 되는 사케 주조회사가 있다. 하지만 그 지방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연례 시음행사는 사케노진뿐이다. 행사가 열리는 니가타 현은 1인당 사케 소비량, 주조회사 수, 도지(杜氏·주조장인) 수, 고급주(긴조슈 이상) 생산량에서 전국 1위. 올해 7회째로 니가타 현 96개 주조회사가 모두 참여한다. 참가자는 500여 종 사케를 이틀간 맛보며 구매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 사케는 갈수록 소비가 줄어드는 ‘인기 하락’ 술이다. 맥주 위스키 등 외래 술 선호 추세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건 젊은 층과 여성의 사케 소비가 조금씩 늘어난다는 점과 한국 미국 등 새로운 소비시장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 사케 업계도 변하고 있다. 올해 사케노진도 이런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기자의 사케노진 취재는 이번이 세 번째. 그래서 변화 추이를 추려낼 수 있었는데 올해 두드러진 것은 여성 고객의 증가다. 이치시마(市島)주조의 이치시마 겐이치 사장도 동의하면서 “일본과 외국의 여성 고객을 겨냥해 저알코올 술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생산량의 10%를 수출하고 있으며 저알코올 사케는 병 디자인도 여성 취향이다.
시라타키주조도 비슷했다. 7대째 가업을 계승한 다카하시 신타로 사장(31)은 “처음 사케를 마시는 사람들을 겨냥해 20년 전 개발한 ‘조젠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가 최근 들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여성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며 “병 모양과 색깔을 여성과 젊은이, 서양인 취향의 모던한 디자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사케는 일본음식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14일 니가타 현의 사케노진 행사장을 찾은 한 외국인이 꼬치를 든 채 시음대 앞에서 조코(시음잔)에 담긴 사케를 시음하며 향을 맡고 있다.
일본의 음식 세계화 전략이 수립된 지는 벌써 40여 년. 하지만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2006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목표는 ‘2012년까지 일식 인구 12억 명’.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궁극적 목표는 ‘2013년 일본 농수산물 수출 1조 엔 달성’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 등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고 농가가 어려워지자 일본은 음식 세계화를 통해 농수산물을 수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일식의 참맛은 일본에서 생산된 재료로 조리해야만 느낄 수 있으며 사케와 더불어 먹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집중 홍보했다. 그 마케팅은 성공했고 서양인도 이젠 스시 바에 앉아 초밥의 쌀이 일본산 고시히카리인지를 따지게 됐다. 덕분에 쌀과 다른 식재료 수출도 늘었다. 사케 수출은 주조용 쌀 생산농가의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호쿠세쓰(北雪)주조의 나카가와 야스오 부장은 “막걸리도 역시 한국 음식과 함께 외국인의 입맛에 노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사시미나 스시는 미국인에게 비(非)호감 음식이었지만 최근에는 고급 식문화로 여겨지고 있다”며 “데이트를 할 때 고급 일본 식당에서 사케를 마시며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 여성을 더 잘 대해 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과학이 떠받치는 장인정신
사케 세계화의 바탕은 누가 뭐라 해도 좋은 사케를 빚어내는 ‘도지’와 그들 의식에 내재한 불굴의 장인정신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니가타 현이 기여한 바가 가장 크다. 니가타 현은 일본에서도 좋은 술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사케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 주조회사의 도지 가운데 니가타 현 출신이 가장 많고 매년 여는 신주감평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거나 고급 사케(긴조슈 다이긴조슈 등급) 생산량에서 니가타 현이 매년 1위를 차지하는 통계가 말해준다.
올해 사케노진에서 이 쌀로 빚은 사케를 맛보았다. 야마다니시키 혹은 고햐쿠만고쿠(전국적으로 애용되는 주조용 쌀 품종)로 빚은 사케와 달랐다. 뒷맛은 더 깔끔하고 맛과 향은 좀 더 깊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우리 막걸리도 세계화와 고급화를 위해서는 좋은 술맛을 위해 별도의 주조용 쌀을 개발해 그 쌀로 빚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급 식당서 파는 술’ 인식 심고▼
노부, 세계 27개 도시 일식체인과 브랜드 제휴
내수용(왼쪽)과 수출용 사케를 든 호쿠세쓰주조의 하즈 후미오 사장.
▼‘기내서비스 하면 와인’ 통념 깨고▼
마노쓰루, 에어프랑스 일등석 공급 첫 사케
오바타주조의 오바타 루미코 전무와 에어프랑스 기내 서비스 사케 마노쓰루.
그녀는 12년 전 ‘왜 비행기 기내에서 와인이나 코냑은 주면서 사케는 내지 않지?’라는 아버지의 물음을 흘려듣지 않고 곧바로 에어프랑스 일본지사에 전화를 걸어 사케 기내서비스를 제안했다. 그리고 3년 후 에어프랑스가 주최한 기내서비스용 사케 품평회에 나가 당당히 기내 사케로 선정됐다. 마노쓰루는 세계 최초로 에어프랑스가 시작한 1등석 사케 서비스의 원조 술로 2001년 등극했다.
그런 오바타주조의 명성은 ‘마노쓰루 마호’(준마이다이긴조 고급 사케)로 더더욱 명성을 쌓았다. 이 술은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품평회)의 ‘일본 술’ 부문에서 1000여 브랜드가 있는 니가타 현 사케 가운데 유일하게 금상을 받았다.
글·사진 니가타=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