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큰 파고 속에서 이 총재의 한국은행은 나름대로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이 총재 자신은 한국은행이 위기를 예방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가 심각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겪지 않았던 데는 사실 한국은행의 균형 잡힌 시각과 정책의 도움이 컸다. 비록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역사적 사태를 정확하게 예상하진 못했지만 분석 및 전망에서도 한국은행은 과거보다 한결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행의 전망은 다른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했고 한국은행이 내놓은 각종 해외조사 자료는 해당 사안에 대한 표준적 분석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 간의 이견이 첨예화됐던 점이나 결국 한국은행의 뜻과는 다소 다르게 정책금리 정상화가 지연된 점이 그렇다. 하지만 위기 이후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가 쥐게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에서 한국은행의 무게감이 줄어든 것은 아쉬운 일이다.
중앙은행의 위상이 떨어져 있다는 점, 즉 독립성이 예전만 못하게 느껴진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정부 주도의 경제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정립돼 온 가치다. 따라서 투자자 편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새 총재가 성장 둔화와 자산 버블 사이에서 어떤 쪽에 가치를 둘 것인지,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어떻게 독립성을 유지하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따라 합당한 투자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