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이상→금고형이상한나라 슬그머니 당규 개정민주당 누구도 비판 안해안희정-이광재 등 의식한듯
한나라당은 지난달 26일 상임전국위원회의를 열어 당규를 개정해 비리혐의 확정자 공천기준을 느슨하게 고쳤다. 법원에서 벌금형 이상의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공천할 수 없다는 당규 3조2항을 ‘금고(禁錮)형 이상’으로 고쳤다. 또 “사면됐다면 금고 이상도 문제없다”는 취지의 조항도 삽입했다. 특정인을 염두에 둔 조치인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이번 개정으로 과거 집행유예 후 사면을 받은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과 벌금형을 받은 김무성 의원 등이 2012년 총선 공천신청 자격을 회복했다.
이런 당규 개정은 10일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회의 자료집을 발간했지만 이 내용을 짤막하게만 다뤘기 때문에 꼼꼼히 읽어보기 전에는 찾기 어려웠다. 당 차원의 설명은 일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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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를 더욱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한나라당 공격 포기’로 비치는 민주당의 침묵이었다. 평소라면 대변인 논평,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아침 회의 공개발언 등으로 집중포화를 날릴 만한 사안이다. 한나라당이 성희롱 혐의가 확정된 우근민 전 제주지사의 민주당 복당에 직격탄을 날린 직후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첫 보도 후 36시간이 지나도록 민주당 어느 누구에게서도 한나라당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11일 민주당 당직자들을 접촉하면서 속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민주당 내에서는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등 6·2지방선거 공천 유력자의 과거 전력이 민주당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의 공천기준 완화를 비판하면 집행유예(이 의원은 2심 진행 중)를 선고받은 두 정치인을 공천하려는 민주당 지도부의 계획이 복잡해진다는 게 여러 당직자의 견해였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의 침묵이 마땅치 않은 듯했다. 그는 기자에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언론이 (민주당의 무비판을) 기사로 써 달라. 그게 언론의 역할 아니냐”고 말했다.
여야는 앞서 공직선거법 위반 때 의원직 상실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인 벌금형 100만 원을 300만 원으로 느슨하게 바꾸려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섰다. 하지만 여야 지도부 어느 쪽도 이 사안을 놓고 “우리가 이래선 안 된다”는 자기비판을 한 바 없다. 의원들의 이런 요구에 고민해 온 김충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줄곧 “이런 사안은 의원들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는 말을 해 왔고, 이달 초 스스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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