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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편지/권태면]발밑에 지진을 깔고 사는 나라들

입력 | 2010-03-11 03:00:00


새해 들어 카리브 해의 섬나라인 아이티에 30여만 명이 깔려 죽어 이름도 잘 모르던 나라에 한국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스페인에는 미주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 프랑스에는 잊을 수 없는 식민지, 미국에는 한국에서 캄보디아 가듯 클린턴 부부가 신혼여행을 한 곳으로 서양인에게는 잘 알려진 나라다. 우리도 잘 몰랐지만 6·25전쟁 때 파병까지 해준 나라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미풍과 품성을 갖고 있다고 배웠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에는 구한말 조정이 어려운 나라살림에도 구호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우리가 일제강점 이래 광복과 전쟁 후의 빈곤으로 도움만 받다가 최근에 국제사회에서 원조국 클럽의 일원이 된 것은 감개무량한 일이다.

아이티의 처참한 장면이 뉴스 화면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2월 말에는 칠레 앞바다에서 몇 배나 더 센 리히터 규모 8.8의 지진이 일어나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칠레는 아예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린 아이티와는 전혀 다른 준비된 나라라서 사망자가 1000명이 안 되고 복구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이다.

우리가 동북아 내에서도 강진 발생 가능성이 적은 곳에 사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일본에서도 1923년 14만 명이 죽고 조선인 대학살의 핑계가 된 한 간토 대지진, 1995년 6000여 명이 사망하고 100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낸 고베 대지진이 있었다. 중국에서도 1556년 80만 명이 사망한 산시 대지진, 1976년 25만 명이 사망한 탕산 대지진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옆 나라에 재앙이 터진 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오늘날은 처참한 모습이 생중계되는 세계화의 시대라서 그야말로 남의 일이 아니다.

중남미에서 연달아 지진이 터지자 한국에서 많은 친척과 지인이 이곳 코스타리카 동포에게도 안부 전화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세계지도를 보지 않고 같은 중남미라서 서로 붙어 있는 줄 알고 묻는 말일 텐데 아르헨티나가 서유럽과 같고 브라질은 유럽 전체보다도 더 크다는 사실을 미처 느끼지 못한 탓일 것이다. 중미와 남미 사이에 가냘픈 허리처럼 붙어 있는 이곳 코스타리카로부터 아이티는 오른쪽으로 약 2000km, 칠레는 남반구 쪽으로 5000km나 떨어져 있으니 전혀 딴 동네이다. 너무 먼 지역끼리 서로 모르기는 피차 마찬가지인데 이곳 사람에게 한국이 인도 싱가포르 홍콩 일본 중 어느 나라 옆에 있는지 4지 선다형으로 물어보면 십중팔구 틀리게 답하는 현실이니 서로 알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환태평양지진대 중에서도 칠레와 코스타리카는 교차운동을 하는 지각 판의 경계지점에 있어 지진이 빈발하는 곳이다. 평소에 발밑에 지진을 두고 살듯 약한 지진은 늘 일어나니 규모 6 이상의 강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나느냐가 걱정이다. 지진이 시작되면 계단을 사용하지 말라, 뛰지 말고 차분하라, 집안에서는 창문틀로 가고 머리를 보호하라, 가스나 전열기구가 터져 발생하는 화재에 대비하라 등 유치원 때부터 대비요령을 철저히 교육하고 학교나 관청마다 민방공훈련도 한다. 지진 전문가가 많고 내진 설계나 공사를 할 기술자도 많다. 그러나 나라가 작아 재정이 빈약한 나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면 정작 정부의 복구능력이 문제다. 코스타리카에는 2009년 초 지진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이후, 한 해가 가도록 도로 복구가 안 되고 이재민은 계속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 초 아이티와 칠레의 지진은 준비된 나라, 준비된 국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멀리 중남미에서 지진이든 태풍이든 비상시에 늘 준비된 한국이기를 바라는 마음 보낸다.

권태면 주코스타리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