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특파원, 산티아고-콘셉시온을 가다 부분 운항 산티아고 국제공항, 직원들 간이천막서 근무 시내 차분하지만 일부 사재기 주유소 제한 급유 실시, 17달러어치만 넣을 수 있어
뒤편 창가 쪽에 앉아 있던 가르시아 팸필리오니 씨(37)는 비행기가 칠레 국경선을 이루는 안데스 산맥을 넘기 시작하자 시선을 창밖에 고정시킨 채 단 한순간도 떼지 않았다. 만년설이 겹겹이 쌓인 산맥을 지나 어둠이 내린 산티아고 시내 불빛이 보이는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 오티즈 미란다 씨(33)를 꼭 껴안았다. 미란다 씨의 눈에서도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르시아 씨는 “어렵게 잡은 항공편을 놓칠까 봐 수속 창구 앞에서 노숙을 하며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로스안데스에 산다는 트리니다드 라바카 씨(52)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브라질 휴양지 부지우스 리조트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라바카 씨는 “지진이 발생한 도시 콘셉시온에 사는 동생 가족이 걱정”이라며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지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오후 10시 반 입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들어선 외곽도로는 비교적 평온했다. 늦은 시간 탓인지 차량 통행이 잦지 않았고 주변 도로의 지진 피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일부 교량의 이음매가 끊어진 구간이 간헐적으로 보였고 교량복구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산티아고 시내 역시 차분한 모습이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청소차량들이 다니면서 도시를 정돈하고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칠레KOTRA 무역관 서정혁 차장은 “강진으로 한때 끊겼던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90% 이상 복구되면서 시민들의 일상도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상점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문을 닫았고 회사원들도 퇴근길을 서두르기는 했지만 버스는 물론이고 지하철도 평소처럼 밤 12시까지 정상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3일 동안 크고 작은 여진(餘震)이 100차례 이상 오는 등 지진 공포가 여전히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4일 오전 1시경에도 시내 12층 건물에 있는 KOTRA 무역관 사무실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상점에서는 일부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시민들은 손수레 두세 개를 끌고 다니며 물과 파스타, 쌀, 밀가루 등 생필품을 보이는 족족 쓸어 담고 있었다.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