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맹점을 찌른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유도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맹점을 운운하자 지혜가 질문했다. “그건 얼른 알아채지 못하는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다는 뜻이겠지.” “그럼 맹점이 나쁜 건가요?” “왜?” “찔리니까요.” “글쎄.”
맹점이라는 단어는 완벽할 것 같은 곳에 숨어 있는 허점을 뜻한다. 유도에서 강하고 빈틈없이 보이는 상대 선수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상대방도 모르고 있는 허점을 찔러 나가야만 한다.
“지혜야, 맹점을 보여줄까?” 하자 “맹점은 보이지 않는 것 아니에요?” 한다. 물론 맹점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의미하지만 경험할 수는 있다. 한번 해 보자.(그림) 오른쪽 눈을 가리고 30cm 정도 되는 곳에서 왼쪽 눈으로 오른쪽 원의 중심을 본다. 그런 후 앞뒤로 거리를 조금씩 움직이면 어느 순간 좌측의 별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이 맹점에 맺힌 순간이다. 눈앞의 시야 속에 보이지 않는 곳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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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전공의 시절에 넋을 잃고 쳐다본 사진이 하나 있다. 블랙홀처럼 그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중심부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거대한 혈관들이 솟아오르고, 그 주변에는 화염이 살아서 이글거리듯 수많은 모세혈관들이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는 모습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어디를 찍은 것인지 알아보았는데 바로 맹점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역동적이었다. 망막의 중심에서 귀 쪽으로 3.5mm, 아래쪽으로 1mm에 위치한 맹점의 정체는 눈에서 시신경이 시작되는 시신경유두라는 곳이다. 볼 수 있기 위해서 볼 수 없는 곳이 있는 셈이다. 맹점이 커지거나 모양이 이상해지는 질환에는 시신경염증, 고혈압으로 인한 시신경유두부종, 초기 녹내장을 들 수 있다.
망막에서 맹점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를 눈의 크기라고 한다면 맹점은 그 하늘에 보름달을 나란히 10개 세운 정도로 크다. 양쪽 눈에 각각 이러한 맹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놓았다.
“그런데 아빠, 왜 미국 사람은 맹점을 손가락으로 찔러요?” “손가락이라고?”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조금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영어사전에는 ‘맹점을 찌르다’가 ‘put her finger on his blind spot’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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