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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밴쿠버의 ‘라디오 스타’

입력 | 2010-02-23 11:30:43

이규혁(왼쪽)과 전담코치 제갈성렬. 연합


"여기는 조용하겠는데…."

1990년 대 필자가 한창 해외로 축구 취재를 다닐 때 경기장 취재석에서 자리를 정하기 전 주위를 잘 둘러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 이유는 부스를 따로 배정받지 못한 라디오 중계 팀이 취재석 이곳저곳에 포진한 채 소리를 크게 지르며 중계를 해 이들을 피해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특히 남미 지역에서 온 라디오 중계 팀은 주로 1~2명으로 이뤄지는데 마이크 하나만을 달랑 든 캐스터는 골이 터질 경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오~올"하면서 1분 가까이 숨이 넘어갈 듯 외쳐 옆에 있으면 깜짝 놀랄 경우가 다반사였다.

태극전사들의 메달 낭보가 이어지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번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TV 해설을 맡은 제갈성렬 춘천시청 빙상팀 감독의 '샤우팅' 해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제갈성렬 감독은 모태범과 이상화 '태극 남매'가 금메달을 따내는 등 결정적 장면에서 "아아악"하며 비명을 질러 '샤우팅 해설자' 혹은 '타잔 성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선수들이 달릴 때는 "하나! 둘!"과 같은 구령을 하거나 "좋습니다. 좋아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일본의 나가시마가 이규혁과의 대결에서 부정 출발을 하자 "저런 걸 흔히 선수들 사이에 민폐라고 하죠"하거나 네덜란드의 밥데용이 이승훈의 뒤를 쫓으며 달리자 "얄팍한 심정이에요, 이거~" "밥데용,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등의 재미난 말을 해 '제갈성렬 어록'이라는 것도 생겼다.

'제갈성렬 어록' 중에는 캐나다의 빙상 스타 워더스푼이 나오자 "저 선수 별명이 숟가락이죠. 이름이 스푼 아닙니까?"라고 한 것도 있고 이상화와 독일 볼프가 대결할 때에는 "김치와 소시지의 힘, 어떤 게 셀까요?"라는 것도 있다.

필자는 경기장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에는 옆에서 소리를 크게 내는 라디오 중계가 싫었다.

그러나 TV나 인터넷으로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는 요즘,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열정이 담겨져 있는 제갈성렬 감독의 '샤우팅 해설'이 은근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최근 몇몇 TV 축구 해설자들의 '졸리게 하는' 해설이 못마땅하던 터에 제갈성렬 감독의 화끈한 중계가 더욱 감동을 주는 면도 있다.

TV 해설은 영상이 제공되기 때문에 라디오 중계와는 달리 차분하고 전문적이면서 화면에서 볼 수 없는 뒷이야기 위주의 해설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건 라디오 식 해설로 힘과 감동을 주는 '타잔 성렬', "파이팅 !"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 다시보기 = 모태범, 한국 빙속 사상 첫 번째 금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