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의미의 무게가 묵묵히 흘린 고독한 땀방울의 양을 짐작하게 하는데도 태극기를 두르고 막춤을 추는 모태범의 세리머니는 영락없이 자기가 원한 것을 이룬 자의 자유의 춤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여자 친구는 있는지, 개는 키우는지, 오토바이는 좋아하는지….
“나는 아주 위험한 것을 좋아합니다. 스릴을 즐기고, 오토바이를 좋아하며, 무서운 것에 재미를 느끼는 학생입니다.” 대답이 젊다. 참 젊다. 저 거칠 게 없는 몸의 에너지야말로 모태범 자신감의 원천이리라. 나는 자신감 넘치는 저 젊은 대답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건강한 몸의 에너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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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심연이 보일지라도 피하지 않고 건너뛰며 직접 세상을 느끼는 일. 그것이 젊은 몸의 본능이다. 그런데 요즘 이 땅의 젊은 몸은? 너무 많은 규격 속에 재단되고 평가되느라 규격화됐다. 외상도 없이 상처 입어 시름시름 자신감을 상실했다. 네모난 교실에 네모난 책상에 네모난 화면에 붙박이가 되어 있어 모험을 모르고 위험을 모르고 공포를 모른다. 모르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위험이 두렵고 고독이 두렵다. 모르니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안락에. 그리하여 안락이 인도하는 삶을 살 뿐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잊은 지 오래, 너무도 오래다.
나는 알고 있을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사회가 평가하는 잣대를 그저 익히는 게 전부라 생각한 각박한 삶을 살아내느라 너무 오래전에 나만의 꿈과 사랑을 접지는 않았는지. “해야만 한다”가 “원한다”를 완전히 밀어내어 해야만 하는 것의 목록 속에서 긴장을 풀어본 적이 없는 기진한 인생은 아닌지.
나는 운동하는 사람의 쌈박함을 좋아한다. 아니, 사람을 쌈박하게 만드는 운동의 힘을 경외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엘리트 체육이 국민의 체육 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프다. 나는 우리의 교육이 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 하나쯤은 있는 그런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우울하고 생각의 가지가 무성할 때 손쉽게 생각이 나는 운동 하나쯤은 있는 풍토였으면. 밀고 나가고 뛰고 던지고 피하고 치고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나며 천변만화의 중심으로 몸을 느끼고 경험하다 보면 자신의 고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집중력이 생기고 직관에 힘이 붙는다. 머리로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절실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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