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중한 그날 놓일 꽃을 식장에 들어가서야 봤다. 손님이 드실 음식 맛이 어떤지 전혀 모른 채 가격으로만 정했다. 웨딩컨설팅 업체는 바쁜 현대인에게 편리함을 준다는 점에서 감사하지만 소중한 날은 본인이 직접 준비하는 정성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어머니가 밤새워 만들어준 이불이나 자신이 수를 놓은 밥상보를 가져가는 시대는 아니더라도 그 귀한 날 웨딩드레스와 신혼 여행지를 고르는 일에만 열중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많은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가지만 초대라는 느낌은 사실 별로 없다. 식사비에 준하는 정도의 축의금을 내고 고마운 마음 별로 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의무처럼 다녀오는 결혼식이 더 많다. 인상적인 결혼식에 다녀와서는 신부에게 감사를 전하기보다 웨딩컨설팅 업체의 이름을 묻는다. 미국에서 치러진 친구의 결혼식 전날 ‘브라이드 샤워(Bride shower)’ 때는 신부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인들이 나눠 준비하고 다 같이 선물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축의금 같은 건 물론 없다. 신부가 돋보여야 하는 그날에는 누구도 흰 옷을 입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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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소중한 세 사람인 부모, 자식, 그리고 배우자. 그중 유일하게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와의 시작이기에 더없이 귀한 그날에 좀 더 정성을 기울이며 기(氣)를 모아야 대접이 된다. 상가(喪家)에 가는 일 역시 결혼식 참석 못지않게 많다. 그런데 늘 의아한 사실은 식사는 으레 육개장이라는 점이다.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찬이 별로 필요치 않고 많은 사람을 대접할 때 편리하여 예전부터 다들 그렇게 해왔다는 게 들을 수 있는 설명의 다였다.
결혼식은 본인의 선택이 영향을 많이 주지만 가족을 보낼 때는 남은 가족의 의지로 진행한다. 왜 어느 상가에 가도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이라며 내주는 식사가 없을까. 간식이어도 좋고 과일이어도 좋다. 아버님이 즐겨 드시던 거라 준비해 봤다는 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가슴이 미어질 상주에게 이런 바람을 갖는 것은 욕심일지 모른다. 요즘 상조회사의 광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장례 절차를 대행해 준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대단한 인물이 아니어도 정성스러운 장례식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어머니는 이미 그날을 위한 사진을 찍어두셨다. 고우시다. 그 모습으로 내 지인을 만나실 날을 떠올리면 사실 눈물부터 난다. 무엇을 준비할까. 정성이란 게 뭔지 아는 이들이 손님을 대접하게 하겠다. 또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복도 한쪽의 의자를 다 치우고 탁자 위에 사진들을 놓겠다.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 가족과 행복했던 모습, 이왕이면 수영복 입으신 사진도 하나 놓을까 한다. 그 옆에는 자주 보시던 책과 수첩, 즐겨하시던 액세서리, 내게 주셨던 편지도 놓고 싶다.
바빠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가 더 많더라도 생전 보지도 못한 내 어머니를 찾아와준 지인께 그 정도는 해야 대접인 것 같다. 떠나는 부모님께도 몇 명의 문상객이 다녀갔느냐보다 더 큰 배웅이 될 듯하다. 부디 먼 훗날 내가 하려는 일이 의아한 광경이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많이 좀 해버렸으면 더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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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쉬운 날이 없지만 특별히 기를 모아야 하는 날이 있다고 본다. 세상이 날로 좋아져 중요한 일을 대행해 주는 세태가 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과 일을 나눠 하면서도 형식적인 것은 벗어나길 바란다. 가사를 아는 노래가 줄고, 외우는 전화번호도 열 개를 넘지 못하는 우리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능력이 퇴화한다. 귀한 날에 멋을 부릴 줄은 알아도 맛을 낼 줄은 모르는 모습이 주변에 잦다. 식상하도록 듣는 상상력 향상이나 창의 경영 역시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잠재된 감각을 살려야 하건만, 세상은 우리 감각을 자꾸 무디게 만드는 유혹 천지다. 유혹. 뿌리쳐야 좋을 유혹은 기꺼이 외면할 줄 알아야 더 근사하지 않은가.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