當仁은 ‘인을 실천하는 때를 당해서는’이다. 이에 이설이 많다. 주자는 ‘인을 나의 임무로 삼아서는’으로 풀이했으나 여기서는 孔安國(공안국)의 설을 따랐다. 不讓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於는 ‘∼에게’이다. 師는 先生과 長者를 말한다.
仁이란 대체 무엇인가? 難問(난문)이다. 정약용은, 仁을 행하는 근본은 사람의 本心에 있되, 仁이라는 이름은 실천 이후에 붙는다고 보았다. 맹자는 ‘惻隱(측은)의 마음이 仁의 端(단)이다’라고 하여, 仁을 행하는 근본이 본심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仁이란 개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각자 본분을 극진히 행하는 것을 두고 사용한다. 舜(순) 임금은 아버지 고수(고수)의 마음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孝를 이루었고, 比干(비간)은 은나라 왕 紂(주)가 暴惡(포악)했지만 그를 위해 간절하게 諫言(간언)함으로써 忠을 이루었으며, 文王은 鰥寡孤獨(환과고독)의 四窮(사궁)을 불쌍히 여김으로써 慈(자)를 이루었다. 그 孝, 忠, 慈의 실천이 仁이다. 성리학에서 말하듯이 仁을 理로 본다면, ‘當仁’의 仁만이 아니라 四書五經(사서오경)에 언급된 仁이란 글자를 모두 풀이하기 어렵다.
광고 로드중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