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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철저하게 계급사회라는 점이었다. 노동자와 중산층은 말투부터 다르다.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처럼 발음을 들으면 바로 계급을 알 수 있다. 취향도 다르다. 노동자는 축구에 열광하지만 중산층 신사라면 테니스를 배워야 한다. 블루칼라는 맥주를 마시지만 화이트칼라는 와인을 좋아한다. 옷차림도 다르다. 직업에 따른 제복은 계급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롤스로이스 같은 명품(luxury)은 소수 상류층의 상징이다.
상표로 정체성 확인하려는 사람들
한국에서 명품에 대한 열망은 매우 크다. 명품을 사기 위해 수입에 걸맞지 않은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작용도 많다. 얼마 전 유명연예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명품을 위조한 짝퉁 상품을 팔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3억5000여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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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비싼 상품의 과시적 소비는 여유 있는 신사가 평판을 높이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고가의 귀금속이나 고급 자동차는 경제가 나빠져도 수요가 줄지 않는다. 이는 꼭 필요해서 구입하기보다 부를 과시하거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의 소비는 단순한 사용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실현하는 기능을 가진다. 개인의 정체성이 돈과 직업보다 문화적 취향에 따라 구별되면서 상류문화를 모방하려는 중산층의 심리가 커진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신흥 중산층이 급증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과시소비와 모방심리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어디엔가 소속되려는 욕구 때문에 집단적 정체성에 집착한다. 다른 한편 평등주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누구나 지위상승을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한다. 볼품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 사람들은 백화점에 갈 때 옷을 잘 차려입고 간다. 어느 곳에서나 옷을 잘 입어야 대접을 잘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겉치장과 재산이 유일한 가치의 척도라고 보는 속물(snob)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짝퉁 문화는 놀라운 수준이다. 경제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소비주의가 확산되면서 짝퉁을 향한 열광이 커지고 있다. 짝퉁을 만드는 기술은 명품 회사에 수리를 맡겨도 속을 정도로 정교하다. 진품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짝퉁이야말로 진정성이 사라지고 무한정 대중복제가 가능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과시형 소비, 거품경제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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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