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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다 20차례나 구속됐지만 난 멈출 수 없다”

입력 | 2010-02-08 03:00:00

美 불굴의 反戰 할머니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을 지나다 보면 자주 만날 수 있는 백발의 할머니가 있다. 이 할머니는 미국 의회에서 열리는 청문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상원 외교위원회와 군사위원회 등에 자주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접근이 원천봉쇄됐지만 대법원에도 종종 나타났다. 단아한 모습에 늘 입가에 미소가 감돌지만 가녀린 체격이 연민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이브 테타즈 씨(78·사진).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시작된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가이다. 또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용의자들이 법치주의에 따른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30년간 워싱턴의 공립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일찌감치 197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테타즈 씨는 2005년부터만 따져 봐도 20차례나 구속 수감됐고 14차례나 기소됐던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죄목은 불법시위, 공무집행방해, 법정모욕, 폴리스라인 위반….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에게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죄목이지만 그의 범죄기록에 그렇게 명시돼 있다. 백발의 시위 할머니에 대해 워싱턴 법정은 그동안 매우 관대한 결정을 내려왔다. 대부분 경고 또는 벌금형을 내렸고 고령인 점을 감안해 최장 5일이 넘지 않는 수준에서 구속을 결정해 왔던 것.

소문을 들었는지 수감자들도 테타즈 씨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우했다. 수감자들 사이에서 테타즈 씨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부를 때 쓰는 애칭인 ‘그랜드마(grandma)’로 불렸다. 또 일부 수감자는 그를 ‘사슬에 묶인 언니(sister in chains)’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5년 남편과 사별한 그는 녹내장과 백혈병을 앓고 있으며 청력이 약해 보청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난주 말 워싱턴 지방법원은 테타즈 씨에 대해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5월 상원외교위원회에서 존 케리 상원위원장이 연설하는 도중 일어나 “더는 피를 부르는 전쟁에 돈을 쏟아 붓지 말라.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며 피 묻은 달러 지폐를 바닥에 던진 혐의로 기소된 그에 대해 법정은 75일의 구속형에 1년의 보호관찰 처분을 내린 것. 다만 보호관찰 기간에 다시 구속되지 않을 경우 50일의 구속집행을 유예키로 했다. 테타즈 씨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폭력 시위를 벌이는 것은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합법적 정치행위”라며 “앞으로도 계속 정당한 일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