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예가 세종시 문제이다. 정부가 세종시의 성격을 정부부처 이전을 전제로 한 ‘행정중심복합도시’였던 원안을 바꾸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로 수정하자는 제안을 하자, 과학벨트사업 자체가 정치권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은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에 필수적인 기초과학 진흥과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1단계로 2012년까지 3조5000억 원을 투자해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 등을 건설하고 첨단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건국 이래 최대의 기초연구사업이다. 이러한 대형 사업의 입지는 공모를 통해 지원한 희망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전문가들이 가장 적절한 지역을 평가해 선정하는 것이 원칙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입지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과학벨트 세종시 일방적 결정
세종시 문제 말고도 최근 과학기술사업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경우는 적지 않다. 한 예로 첨단의료산업 분야에서 국제수준의 글로벌 연구개발(R&D) 허브를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앞세우고 보건복지부가 추진해 온 첨단의료복합단지사업은 10개 지방자치단체의 치열한 경합 끝에 지난해 8월 대구경북과 충북 오성 2곳을 선정했는데, 입지가 선정되자마자 바로 “특정 지역을 배려한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비난에 휘말린 바 있다. 또한 21세기 고령화시대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뇌(腦) 관련 융합연구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추진하는 한국뇌연구원의 위치 선정 작업도, 여러 후보지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가운데 정부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결정을 미루자 관련자들이 정치적 배경의 유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처럼 과학기술 관련 사업에 정치적 논란이 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지식기반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과학기술 예산도 증가할 것이고 정부의 돈이 투입되는 곳에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지역에 첨단지식산업단지나 연구소를 유치하면 수조 원의 투자와 수많은 일자리가 기대되는데 어떤 정치가가 나 몰라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적 낭비 부르는 입지 선정
문제는 정치인들의 지나친 개입은 과학기술사업의 본질을 훼손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데 있다.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지식산업단지로 지정되거나 대규모 국책연구소가 설립되는 일이 생기면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국가적으로 낭비가 극심해지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수년의 임기가 끝나면 사라져버리지만, 과학자들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잘못된 결정의 뒤치다꺼리를 하거나 성과부실의 책임을 뒤집어쓰기 십상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소집단의 이익을 위해 과학기술사업에 정치가의 개입을 자청하는 일부 과학기술자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부조리를 막는 근본적인 처방은 양식 있는 과학자들이 시민의식을 발휘해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일이다. 그러다 투명성이 훼손되거나 정치권력의 개입이 도를 넘었다 싶으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