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VANCOUVER 2010]100분의 1초 승부 ‘과학전쟁’

입력 | 2010-01-26 03:00:00


각국 과학자들 동원해 기록단축 경쟁
유니폼-스케이트-장비 곳곳에 섬세한 첨단과학

| 스포츠과학이 지배하는 겨울올림픽

《지난해 영화 ‘국가대표’ 덕분에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잠시나마 덜었던 스키점프 대표팀. 4명으로 이뤄진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서울 한양대 공학센터를 찾아 강의를 들었다. 한양대 기계공학과 조진수 교수,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이영재 교수 등 항공학 전문가들이 강사였다. 5명으로 이뤄진 한양대 연구팀은 자발적으로 이들에게 최적의 비행자세를 찾아주겠다고 나섰고 그동안의 분석을 토대로 정리한 것을 선수들에게 들려줬다.》

 

한양대 연구팀은 강원도 평창 훈련장에서 선수들의 점프 과정을 모두 녹화했고 비행기를 설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입력해 선수들의 비행자세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더 나아가 선수들의 신체 비율을 적용해 높이 25cm의 소형 마네킹을 만들어 이를 최고 초속 60m 바람이 부는 대형 ‘풍동(風洞)’에서 시험했다. 가상현실에서 좀 더 정밀한 수치들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대표팀은 과학이 스포츠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오로지 근육의 힘과 몸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중력과 마찰력, 기구를 이용하는 경기가 많은 겨울올림픽 종목들은 여름올림픽 종목보다 사실 과학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과학계와 연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각국의 과학수준을 스포츠라는 매개로 견주는 ‘과학전(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봅슬레이 팀에는 로켓 과학자들이 경기력 향상을 돕고 있다. 과학자 중 한 명은 미국의 항공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익스페리멘털 디자인&어낼러시스 솔루션스사의 공동 창업자로 로켓 과학 기술자인 커트 니콜 씨다. 니콜 씨는 봅슬레이 팀의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영상 카메라를 결합시킨 특수 장치를 썰매에 붙여 경기장에서 봅슬레이 썰매 운행의 전 과정을 영상에 담고 가속, 최고 속도, 방향, 고도 등의 모든 데이터로 수치화했다. 이는 선수들이 얼음 트랙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루트로 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봅슬레이 경기는 100분의 1초차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과학의 도움이 100분의 1초라도 줄여준다면 메달의 색깔이 바뀐다.

이번 대회 개최국 캐나다의 스포츠과학 투자는 특히 눈에 띈다. 캐나다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무려 5년 동안 800만 달러를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프로젝트 이름이 ‘1급 비밀 프로젝트(Top Secret project)’. 마치 국가 기밀을 다루는 듯한 이 프로젝트 이름에서 캐나다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프로젝트에 포함된 종목의 코치 등 지도자들은 내용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할 정도로 보안이 엄격하다. 선수들에게는 ‘이성 친구에게 잠자리에서도 내용을 말해선 안된다’는 경고 조항도 있다.

1급 비밀 프로젝트는 세부적으로 17개의 대학과 연구소와 합동으로 진행하는 55개의 프로젝트로 나뉘어 진행됐다. 일반 스노보드보다 마찰력을 15∼20% 줄여주는 최첨단 스노보드의 개발부터 경기 순간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주고 경기 후에는 다시 긴장감을 풀어주는 스포츠 심리학, 유도 미사일 과학에 쓰이는 오차 5cm 이하의 초정밀 GPS를 이용해 최적의 코스를 찾는 알파인 스키, 컬링의 브러싱 기술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을 커버한다.

국내에도 세계적으로 통하는 스포츠 과학이 있다. 바로 세계 최강 자리를 10여 년째 유지하고 있는 쇼트트랙이다. 쇼트트랙은 곡선 구간에서 승부가 가려진다. 총 길이 111.12m의 트랙 중 곡선의 비율은 48%(53.41m)지만 선수들이 움직이는 궤적을 분석하면 80∼90%가 곡선운동이다. 즉 선수들의 성적은 곡선 구간에서 생기는 원심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다. 한국 선수단은 스케이트 양쪽 날을 원운동하기 좋도록 일정한 곡률 반경으로 휘게 하는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최적의 곡률 반경도 찾아내 구현할 정도다.

유니폼도 첨단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에서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이 한 예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에는 표면에 촘촘한 홈이 나 있었다. 이는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치 골프공 표면에 작은 홈(딤플)을 만들어 멀리 날아가게 하듯 유니폼 표면에 미세한 홈을 만들어 공기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 유니폼의 무게도 점점 줄어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은 170g에 불과했다.

스포츠 과학의 대상은 꼭 장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의 수면과학자를 고용해 대표 선수들에게 숙면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콜로라도 스피링스에 있는 선수촌의 방 160개를 숙면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숙면이 경기에서 선수들의 민첩성과 반응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과학이 스포츠를 어디까지 진화시킬지 궁금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