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할머니도 “삶의 활력소” 공 뻥뻥“월드컵 보게 6월까지 살았으면” 기도
깊게 팬 주름살이 연륜을 말해준다. 반바지 대신 치마를 입은 이도 있다.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만 보면 ‘과연 골문까지 갈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열정만큼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60대 할머니도 ‘젊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북쪽으로 600km가량 떨어진 은코완코와라는 흑인 빈민가엔 세계에서 유일한 축구 리그가 있다. ‘할머니 리그’다. 지역 내 8개 팀이 참가하는 이 리그에서 60세 할머니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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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며느리, 손자 등도 이날만큼은 열성 축구팬이 돼 할머니를 응원한다. 다른 할머니들보다 발이 빨라 별명이 ‘마라도나’인 베카 마실루 할머니(65)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바탕 축제가 벌어집니다. 운동장에 있을 땐 진짜 마라도나가 된 기분이죠.”
○ 형편은 열악해도 마음만은 행복해
격렬한 운동이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할머니들은 “축구 때문에 건강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할머니는 “예전엔 고혈압, 당뇨 등으로 고생했지만 이젠 의사가 어떻게 건강이 이렇게 좋아졌냐며 놀랄 정도다”며 웃었다. 노라 마흐베라 할머니(83)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다 삶의 활력소가 생기면서 모두 10년은 젊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만 해도 축구를 하기 전엔 뇌중풍으로 6번이나 쓰러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뛰고 있지 않냐”며 웃었다.
할머니 리그의 형편은 열악하다.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과 주민들의 지원으로 유지되지만 여전히 축구공 하나 사기 힘들어 꿰매서 쓰고 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함께 공을 차고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무보수로 팀을 맡은 한 코치는 이렇게 얘기했다. “젊은 선수들을 가르칠 땐 스트레스도 받고 돈도 필요하죠. 하지만 할머니들과 함께 있을 땐 다릅니다. 실컷 웃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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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텐버그=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