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택시를 타고 서울 이태원 부근을 지나던 중 길 옆의 거대한 신축 건물을 보고 흠칫 놀란 일이 있다. “아니, 이게 뭐죠?” 하고 기사에게 물으니 새로 지은 용산구청이라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또 놀랐다. 건물 외벽에 거대한 무궁화 마크와 함께 간판처럼 용산구의회라고 커다랗게 쓰인 것 때문에. 나중에 들으니 그 건물은 호화청사라고 이미 언론에 오르내렸다. 한데 그날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호화라기보다는 참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은 내 일이 아니라는 듯, 참 거창하고도 특이한 모습 때문에 놀랄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니 건물에도 유행이 있나 보다. 새로 지은 구청 청사들은 하나같이 비대칭 아니면 가분수의 유난스러운 모습에다 유리로 뒤덮여 차가운 느낌 일색이었다. 거기다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우며 구의회, 문화센터 등을 한곳에 몰아넣어 크기는 다들 대단했다.
겉모습 멋지지만 속은 구태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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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20여 년이 흘러 관공서들이 저렇게 첨단의 청사들을 지으니 내부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소위 호화청사가 대개는 쓸데없이 로비만 요란하지 정작 일하는 공간은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판사로 재직할 때 외국의 법원이나 관공서,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청사는 역사나 품위로, 그리고 분위기로 압도했지, 건물의 위용이나 규모로 기죽이지 않았다. 서양은 사람들도 크지만, 그곳에 자라는 동식물도 다 큰 게 신기했었는데, 의외로 그들은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건물은 겉으로는 소박한데 들어가 보면 쓰임새 있는 공간도 많고 구석구석 잘 꾸며져 있다. 미국 뉴저지 주 연방법원의 톰슨 판사 방도 와인색 책상과 가죽의자가 멋진 조화를 이루었던 기억이 있다. 복도에는 유명 화가의 난해한 그림보다는 법원의 역사와 자료 등이 전시되거나 역대 판사들의 중후한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는 다른 관공서나 학교도 비슷했다.
사실 관공서는 그 나라의 얼굴이라고 한다. 우리가 별로 잘사는 나라로 치지 않는 동유럽 국가를 가도 관공서는 겉보다는 내부가 품위 있게 제대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의 판사실은 아직도 문이나 벽이 온통 철제다. 화재예방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개 기관장 방은 목재로 되어 있는 걸 보면 꼭 그 이유도 아닌 것 같다. 결국 견학 온 아이들로부터 컨테이너 박스 같다는 평을 듣고야 말았다. 그뿐인가. 관공서와 학교를 돌아보면 겉모습은 멋지지만, 번쩍이는 황금색 엘리베이터는 유흥주점을 연상케 하고, 역대 기관장 사진을 죽 걸어놓은 모습은 영정사진이 따로 없다고들 한다. 사무공간 개선사업으로 모처럼 철제 캐비닛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건 다름 아닌 사우나 옷장이다. 민원인들 드나드는 공간의 벽과 바닥이 온통 시멘트라 흡음(吸音)이 안 되어 웅성웅성 시끄럽기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우리의 파출소 책상이 늘 취객의 발길에 차이고 기동대 버스가 툭하면 수모를 당하는 것도 허술한 모습 때문이라는 지적도 귀 기울일 만하다.
보여주기 콤플렉스 벗어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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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yhk888@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