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인생’을 만들어가는 3명의 소신파 청소년
《2010년 새날,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이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여자 중학부 역도 +75kg급 인상과 용상 합계 한국 신기록을 갈아 치운 박윤희 양(15·강원 양구여중 3),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셰프’를 꿈꾸는 이동훈 군(18·서울 삼성고 2),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포항에서 5시간을 달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기구 관련 활동에 참가하는 김민경 양(17·경북 경주여고 1)이 바로 그들이다. 당당한 호랑이의 걸음으로 꿈을 좇는 아이들을 소개한다.》
“으랏차차” 박윤희 양
장미란 언니, 2년만 기다리세요
언니기록 깰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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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양의 꿈은 장미란 선수와 같은 한국 여자역도의 간판스타가 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에 역도와 처음 만난 이후 줄곧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체육시간에 계주를 하는 박 양의 모습이 체육교사의 눈에 띄었다. 체격에 비해 지구력과 순발력이 뛰어났던 박 양에게 체육교사는 역도를 권했다. ‘역도를 하면 키도 크지 않고 살이 더 찐다는데…’라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역기를 한 번 잡자 3kg, 5kg씩 기록을 올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박 양은 “이젠 교복보다 운동복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중2 때였다. 인상 78kg, 용상 90kg 기록을 가지고 있던 박 양은 인상 80kg, 용상 100kg 기록을 깨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졌다. 같은 체급의 여자 선수들에게 이 기록은 넘기기 어려운 구간으로 통한다. ‘반드시 넘기고 만다, 힘든 것도 참고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그만 못 둔다’는 각오로 6개월을 버텼다. 기초 훈련으로 몸을 다진 끝에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박 양은 지난해 9월 열린 제11회 전국 중등부 역도경기대회에서 인상 100kg, 용상 120kg, 합계 220kg을 들어 여중부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장미란 언니예요. 앞으로 2년쯤 더 열심히 훈련해 장미란 언니의 기록에 도전하는 게 저의 꿈이에요(웃음).”
“UN으로” 김민경 양
난민구호기구서 일하며 지구촌 헐벗은 이웃위해 봉사하는 삶 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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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출신 손들어보세요!”
지난해 8월 성균관대에서 열린 ‘제3회 청소년 경제회의’ 직전 행사 관계자가 참가학생들에게 물었다. 50여 명의 참가자 중 민족사관고, 외국어고, 국제고 출신이 45명이었다. 일반고 학생은 5명, 그중에서 지방 출신은 김 양을 포함해 단 두 명이었다. 경북 포항시 집을 떠나기 전 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가면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애들이 많이 올 거다. 틀려도 괜찮아.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하고 와!” 김 양은 회의에서 이스라엘 대표로서 자신이 지지했던 ‘정책 5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각국 대표와 국제연합을 자신 있게 설득했다.
김 양의 꿈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일하는 것이다. 지난해 초 인연을 맺게 된 인도인 남동생 ‘데바’를 통해 생긴 꿈이다. 김 양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한국컴패션에서 필리핀, 인도, 캄보디아 등에 사는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보내온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봉사를 했다. 결연을 통해 직접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김 양은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생활하는 데바에게 컴패션을 통해 매월 3만5000원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한 달 용돈 10만 원 중에서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 양은 ‘세계의 난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김 양은 꿈과 관련된 활동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제1회 전국 청소년 모의국회에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으로 참가했다. 친구들과 ‘라온 힐조(‘라온’은 ‘즐거운’이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며 ‘힐조(詰朝)’는 ‘이른 아침’을 나타내는 한자어)’라는 교내동아리를 만들어 독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캠페인을 했다. 교외 활동 때문에 학교공부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김 양은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모두 1, 2등급 이내의 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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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바람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잖아
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연합일(유엔 데이)
행사에 참가하려면 포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을 가야 해요. 그래도 유엔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면 새로운 힘이 생겨요(웃음).”
“주방이 좋아” 이동훈 군
김치 요리로 세계인 입맛 사로잡는 최고의 셰프 될거예요
4일 오후 8시 SK와 행복나눔재단이 지원하는 ‘해피쿠킹스쿨’의 요리수업이 진행되는 서울 종로구 효제동 수도요리학원. ‘채소로 속을 채운 훈제연어 롤’을 만드는 이 군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돌돌 만 연어 위에 무순으로 장식을 하는 이 군의 표정이 일류 요리사 못지않게 진지했다.
이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화 ‘요리왕비룡’을 보고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초로 시도했던 요리는 라면, 달걀프라이가 아닌 궁중음식 ‘구절판’이다. 쇠고기, 버섯, 오이, 당근, 달걀을
채 쳐서 얇게 부친 밀전병과 함께 구절판을 선보이자 가족들은 “맛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요리사가 되겠다는 이 군의 뜻에는 가족 모두 완강히 반대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남자가 어떻게 주방에서 칼을 잡느냐” “공부해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다.
하지만 이 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문계고에 진학한 후 고1 때는 요리학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한식조리기능사 필기시험 교재를 얻어 몰래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필기시험에만 5번 떨어졌다.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 군은 정면으로 나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정말로 요리가 하고 싶다, 내 꿈을 위해 살고 싶다”고 설득했다. 부모도 이 군의 단호하고 진실한 설득에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이후 이 군은 단번에 시험에 합격했다.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해피쿠킹스쿨에서 이 군은 일주일에 세 번, 세 시간씩 전문 요리강사에게 무료로 요리를 배운다. 지난해 10월에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1월 중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시험을 볼 계획이다.
“칼 잡고, 프라이팬 돌리고, 채 써는 게 정말 재밌어요. 김치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요리해서 세계 최고의 ‘셰프’로 인정받고 싶어요. 기대하셔도 좋아요(웃음).”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