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있으면 살아남고 없으면 도태된다
사실, 아바타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문명세계의 인간이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 감화돼 그들의 편에 서서 문명사회에 반기를 든다는 줄거리는 ‘늑대와 춤을’(1990년)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백인들의 미국대륙 개척이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주었다는 기존 서부극의 시각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장르로, 서부개척의 본질은 영토확장을 위한 침탈이었다고 보는 새로운 관점의 서부극)에서 익히 보아온 것이지요. 공룡을 모델로 한 듯한 각종 외계생물들은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에서 본 낯익은 캐릭터이며, 자연은 물론 만물에 영혼이 서려있다는 애니미즘적 세계관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경험한 바 있지요.
하지만, 아바타는 21세기를 빛낸 영화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 공산이 큽니다. 왜냐고요? ‘영화’라고 하는 매체가 가야할 길을 새롭게 제시한 선각자적인 작품이 바로 이 영화이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는 영화를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혁명적인 시도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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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가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아바타를 통해 신체의 자유를 얻게 된 제이크는 명령에 따라 나비족 속으로 침투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는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전사가 되기 위한 위험하고도 낭만적인 여정을 거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자연만물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나비족의 모습에 동화되면서 제이크(의 아바타)는 그만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이윽고 인간은 각종 첨단무기를 앞세워 나비족의 근거지를 습격해오고, 제이크는 나비족과 함께 인간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합니다.
[2] 생각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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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안경을 착용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3D영화에 열광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란 매체가 가야할 미래를 보여준 역사적인 작품으로 기록되리란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아바타가 3D 혁명을 이룬 배경에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수준의 영상과 스펙터클이 있었습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이모션 캡처’라고 명명한 신기술을 선보였는데요. ‘감정(이모션·emotion)까지 잡아낸다’는 뜻을 가진 이모션 캡처는 실제 배우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센서로 포착해 이를 컴퓨터그래픽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존 ‘모션 캡처’ 기술을 뛰어넘어, 배우의 미세한 얼굴표정까지 모두 잡아내어 사실성을 극대화한 첨단기술이지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은 혁명이라 할 만합니다. ‘트랜스포머’가 실사(實寫·카메라로 실제 촬영한 것) 이미지 위에다가 CG로 만든 로봇들의 이미지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합성해 ‘새로운 영상세계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바타는 트랜스포머의 상상력과 기술력을 훌쩍 뛰어넘어버립니다. 이 영화엔 실사와 CG의 구분 자체가 없습니다. 실사로 찍은 인간들의 모습과 CG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나비족 세계의 모습은 경계를 구분 짓기가 불가능합니다.
아! 현실이 가상이요, 가상이 현실인 영화가 탄생한 것이지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장자의 ‘제물론’에 등장하는 말로, ‘꿈에 내가 나비가 되어 즐기는데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물아·物我가 한 몸이 된 경지)이 영상을 통해 구현된단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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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아바타는 35년 전에 만들어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출세작 ‘죠스’(1975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들려드릴 게요.
1950년대부터 컬러TV가 미국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70년대에 컬러TV의 인기는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TV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어요. 서서히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은 뜸해졌고, 극장매출이 줄어들면서 ‘이러다간 영화산업이 고사(枯死)하고 말 것’이란 예측까지 나왔지요.
바로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영화가 바로 죠스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집체만 한 크기의 식인상어가 해변의 사람들을 마구 잡아먹는 무지막지한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해냈어요.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TV에선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스케일과 서스펜스가 영화엔 있다’는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영화가 직면했던 매체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지요.
어때요. 아바타와 죠스는 비슷한 점이 많지요? 이젠 상상하는 모든 걸 영상으로 표현할 기술력을 인간은 갖게 되었어요. 그래요. 이젠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무서운 시대가 된 거예요. 상상하면 살고 상상하지 못하면 죽는, 그런 시대가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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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