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만여채 쏟아진 신규 단지 현장 가보니
《경기 인천 지역에 지난해 11월부터 이번 달까지 서울의 5배가 넘는 3만5892채가 한꺼번에 입주를 시작하고 있지만 입주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로 주택 거래가 전반적으로 부진해 자기 집을 팔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데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세입자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잔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는 계약자가 늘자 건설사마다 공사대금 회수가 안 돼 유동성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DTI 규제에 기존집 안팔려 계약금 손해 보고 입주포기
판교 일부단지 입주율 33% 전세 안나가 계약자 발동동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동부센트레빌시티 단지. 현재 1∼3단지 입주율이 평균 50% 정도로 저조하다. 남양주=박영대 기자
#2. 경기 남양주시 진접지구의 115m²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은 B 씨(33)는 분양가보다 2000만 원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내놓았다. 기존 집을 팔고 잔금을 치르려던 계획과 달리 기존 집에 대한 매수 문의조차 오지 않는 데다 고양시에서 1만여 채, 진접지구에서만 4000채 가까이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원하는 가격에 새 집의 세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B 씨는 “입주 지정 기간이 끝나 연 11%짜리 잔금 연체 이자를 물고 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안 나타나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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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찾은 경기 남양주시 진접지구 일대도 입주가 시작된 지 두세 달이 넘었지만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내 상가 2층은 거의 비다시피 했고 상가 1층에 나란히 들어선 부동산 중개업소 10여 곳도 손님이 없어 한가했다. 전셋집을 알아보러 왔다는 임모 씨(29)는 “115m²(34평형) 전셋집이 7000만 원 선인데 매물이 많아 좀 더 가격을 깎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로또’로 불리며 청약 광풍이 일었던 경기 판교신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1월 입주를 시작한 한 단지는 1081채 중 356채 정도가 입주해 입주율이 33% 정도이고 단지 주변에 새로 개통된 왕복 6차로는 출퇴근 시간대에도 한산한 모습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대우푸르지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잔금 납부 기일이 1, 2월에 몰려 있는데 기존에 살던 집은 안 팔리고 새 집도 전세로 나가지 않아 입주가 안 된 아파트가 많다”고 말했다. 판교신도시 백현마을 인근의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처분되지 않으면 최대한 대출이라도 받아보다가 이도저도 안 되면 분양받은 집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입주 시점까지 잔금 해결을 못 하면 연체료와 기본 관리비를 내야 하는데도 그동안 분양받느라 투자한 돈이 아까워 분양가 아래로 쉽게 가격을 못 낮추는 계약자도 많다”고 말했다.
○ 건설사들 입주 마케팅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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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교통망이나 상업, 교육 시설 등 기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아파트만 한꺼번에 지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입주 물량이 증가한 상위 5개 지역은 경기도의 고양 파주 김포 용인 군포시로 모두 기반시설이 부족한 수도권 외곽지역이다.
입주율이 저조하자 각 건설사도 비상이 걸렸다. 계약금을 20%에서 10%로 낮추고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 후불제 등 공격적인 분양 마케팅을 벌였던 건설사들은 입주 지연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와 다른 사업장 분양 계획 연기를 피하기 위해 다시 입주 마케팅에 나서는 실정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집값이 계속 떨어지자 10%에 불과한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분양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계약자들이 늘고 있다”며 “이 경우 잔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중도금에 대한 이자 상환 요구가 시공사로 돌아오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1번지 김은경 리서치팀장은 “‘묻지마 투자 수요’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처음부터 입주할 생각 없이 단기 차익만 노렸던 투자자들이 오히려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돌아서자 계약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하반기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내세우며 2007년 당시와 같은 밀어내기 분양이 성행했던 만큼 몇 년 뒤 같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양주=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송도=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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