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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펀 월드컵]마라도나에 속 끓는 ‘마라도나 축구’

입력 | 2010-01-07 03:00:00


《동아일보는 월드컵의 해를 맞아 4인 4색의 축구 칼럼을 게재합니다. 세계적인 칼럼니스트 랍 휴스의 ‘월드컵 이야기’,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돌파! 남아공 월드컵’, 재기발랄한 입담꾼 한준희 KBS 해설위원의 ‘펀펀(FUN FUN) 월드컵’, 현장을 누비는 양종구 기자의 ‘킥오프’. 신선하고 색다른 시각으로 독자 여러분께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르헨티나의 지휘봉이 디에고 마라도나의 손에 계속 들려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대한민국, 그리스, 나이지리아 모두 한결 같을 게다. 예선과 본선이 종종 판이한 결과를 낳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마라도나의 감독 역량은 미덥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선수로서 필요한 덕목과 감독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축구선수 마라도나’가 세계 축구팬의 뇌리에 위대한 전설로 남아 있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마라도나는 축구에서 가능한 모든 환상을 현실로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그의 플레이 하나하나는 아르헨티나로 하여금 수많은 강적을 극복하고 영광을 쟁취하게 했다. 그는 개인기 자랑에만 몰입하는 선수가 결코 아니었으며 팀 전체를 더 좋게 만드는 선수였다. 천재이자 영웅인 셈이다.

결국 마라도나라는 거대한 존재는 이후 아르헨티나 축구의 지향점을 결정지어 버렸다. 쉽게 말하면 ‘마라도나가 했던 그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마라도나처럼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일당백의 선수, 즉 제2의 마라도나에 대한 갈망이다. 다른 하나는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서 수행했던 역할, 즉 창조성 넘치는 플레이메이커를 공격의 중심에 두는 전통이다.

제2의 마라도나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갈망은 무수한 ‘마라도나들’을 자천타천으로 생산해냈다. 디에고 라토레, 아리엘 오르테가, 마르셀로 가야르도, 후안 로만 리켈메, 파블로 아이마르, 하비에르 사비올라, 카를로스 테베스, 세르지오 아게로, 에세키엘 라베시, 마우로 사라테…. 목록은 매우 길다. 여기에는 유명 스타들, 미완성의 선수들, 기억조차 되지 않는 실패한 선수들이 포함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그 누구도 마라도나 반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선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단 한 명의 예외가 리오넬 메시다. 마라도나의 축구기술을 가장 많이 빼닮은 메시만이 ‘진정한 마라도나’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을 구비한 상태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구조적 측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라도나 이후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3-3-1-3, 3-4-1-2, 4-3-1-2 등 각종 포메이션의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최전방 공격수를 지원하며 공격을 풀어가는 플레이메이커의 존재와 역할만큼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바로 마라도나가 현역시절 떠맡았던 ‘1’의 자리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마라도나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양대 키워드는 마라도나 자신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대표팀에서 모두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 제2의 마라도나로 손색없는 메시가 있으나 그는 소속 클럽에서 받는 것에 비해 훨씬 미미한 지원을 아르헨티나 동료들로부터 받을 뿐이다. 무엇보다 마라도나의 전술적 지원이 바르셀로나 감독 호세프 과르디올라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약 1년 전 마라도나와 불화로 대표팀을 그만둔 플레이메이커 리켈메의 부재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다소 기복이 있지만 리켈메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믿을 만한 정통파 플레이메이커인 까닭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사비 에르난데스 같은 능란한 미드필더와 함께 뛰는 메시가 무서운 위력을 뿜어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르헨티나 서포터스들의 심경은 편치 않을 것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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