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KB경영성과 타박자격 없다
하지만 강 행장이 이를 거절하고 회장 내정자로 선출되자 금융감독원은 16일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대해 예정에 없던 검사를 돌연 시작했다. 명목은 ‘1월 중순 예정된 종합검사의 사전조사’였지만 본검사를 몇 배 능가하는 초고강도였다. 초점은 ‘행장 등의 개인비리 캐기’에 맞춰졌고 행장 운전사까지 불러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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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일상적인 조사였을 뿐” “강 행장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바보는 없다. 당국자들도 금융권 사람들이 그 말을 믿기를 내심 원치 않을 것 같다. ‘관치금융이 사라졌다’고 오판한 채 정부 의도를 거스를 경우 어떤 무서운 결과가 빚어지는지 새삼 깨닫고 옷깃 여미기를 기대할 것이다. 실제로 신한, 하나 등 ‘1인자 지배’가 오래된 은행들은 표정이 얼어붙었다.
은행연합회는 이달 중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모범규준(Best Practice)을 발표한다. 강 행장에게 말한 ‘제도개선 작업’의 결과물이다. 당국은 법규가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자율규범을, 그것도 사외이사의 선임절차 등에 관한 것을 핑계로 이번 일을 벌인 것이다.
필자와 만난 당국자들은 “지난 5년간 강 행장이 한 일이 뭐 있느냐”고 했다. KB에 검사 나온 조사역도 같은 얘기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성과 없는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은 지분 하나 없는 정부가 아니라 주주들 몫이다. KB금융은 외국인 지분이 58%다. 그중 최대지분을 가진 ING는 주주대표로 회추위에 참석해 강 행장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미국의 주총안건 분석전문기관인 ISS도 ‘강 행장에게 찬성’ 의견을 내놓았다. 삼성투신운용 등 국내의 재무적 투자자 20개사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들 주주의 권리를 짓밟을 권한을 누가 금융위원장에게 주었는가.
더욱 가소로운 것은 금융당국이 경영성과를 타박하는 대목이다. 국민은행이 정부 손에 있을 땐 가계금융만 했다. 글로벌 경쟁은 엄두도 못 내던, 크고 굼뜬 초식공룡이었다. 그 은행이 민영화 이후 국내 최대 금융사로 성장했다.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할 정도가 됐다. 거꾸로 당국자들에게 묻는다. 이 은행이 리딩뱅크로 발전하는 데 당신들 한 일이 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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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규제의 이론적 근거가 탄탄하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금융의 공공성에 따르는 건전성 규제다. 행장 등 경영진에 대한 자격기준도 필요하지만 ‘적법하게 선출된 내정자라 해도 맘에 안 들면 주저앉힐 수 있다’는 뜻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2월 대통령에게 “금융을 선진화하겠다. 해외투자가들에게 한국 금융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심겠다”고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그러나 그 직후 대외 신인도에 먹칠하는 일을 했다. 거짓 보고한 셈이다.
이제 와서 강 행장의 회장 선임을 재추진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관치 행태는 돌려세워야 한다. 대통령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곧 G20 정상회의를 열 나라에서 ‘진동수류(流) 관치를 방치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청와대밖에 없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