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은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있었던 스포츠동아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각오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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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태어났다면 3가지는 꼭 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항공모함 함장,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야구 감독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이다.
공통점이 있다. 세 직업 모두 부하들을 손 끝 하나로 지휘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세계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리는 2010년, 축구대표팀 감독만큼 막강한 권력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엄청난 압박감을 가진 자리가 또 있을까.
허정무 감독은 스포츠동아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월드컵이 끝난 후 부끄럼 없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말로 그 복잡다단한 심정을 전했다.
“월드컵 16강 자신있다”
○부끄럼 없는 감독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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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만큼은 터럭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월드컵은 늘 대회가 끝나고 나면 후회가 있었어요. 선수 때는 좀 더 잘해볼 걸, 코치 때는 상대를 더 잘 알았어야 했는데…. 월드컵이 열리는 해를 앞두고 설레기도 하고 중압감도 크죠. 하지만 어찌됐든 이번에는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끝나고도 후회하지 않고 싶어요. 내 능력 힘 에너지 모두 쏟아 부어야죠. 선수들에게 부끄럼 없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허 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도 잠시 조심스러워 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대표팀에 쏠려 있는 이 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선수들도 너무 압박과 부담을 가져서는 우리 플레이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되도록이면 선수들에게 편한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교회에 가니 교인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준다며 기도를 해주더라고요. 정말 참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전력분석이 하루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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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공식일정을 제외하고 나면 허 감독의 주된 일과는 다름 아닌 TV시청이다. 각국 해외리그 중계는 물론이고 같은 조에 속한 아르헨티나, 그리스, 나이지리아 비디오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대국 전력분석 자료는 구하는 대로 전부 가져오라고 해 뒀다. 그의 집 거실 한 쪽에는 DVD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꼼꼼히 체크한 DVD는 편집 작업을 위해 비디오 분석관에게 다시 보낸다. 주말이나 주중에 해외리그 중계를 보고나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허 감독은 “요즘에는 낮에 1∼2시간 청하는 잠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짬짬이 바둑도 두고 등산으로 머리도 식히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세계의 벽 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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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팀 가운데 못한 팀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히 강한 상대들입니다. 그러나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닙니다. 이제 한 번쯤 세계의 벽을 넘어설 시기가 됐다고 봐요. 이번 대회 정말 큰 의미가 있죠. 안방에서 열린 2002년에는 4강에 올랐지만 원정에서는 16강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그 숙제를 저와 선수들이 풀고 싶습니다.”
재차 다음 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으로 정해 둔 목표는 16강인가요? 아니면 더 나은 성적도 혹시 기대하고 계신가요?”
이에 대해 허 감독은 단호했다. “조별리그 통과가 지상목표입니다. 이것도 솔직히 이루기 쉽지 않죠. 선수단이 모두 합심이 되고 이런저런 시너지 효과까지 더해져야 가능한 목표입니다. 그 다음이요?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해외파, 대표팀 수준 끌어올릴 의무 있어
박지성(맨유)과 박주영(AS모나코) 등 일찌감치 선진리그를 몸으로 부딪히며 익힌 선수들이 있기에 이번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청용(볼턴)도 맹활약 중이고 기성용도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에 입성했다. 허 감독은 이들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박)지성이와 (박)주영에게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어요. 자신들만 잘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죠. 대표팀 다른 동료들의 수준을 함께 끌어올려줘야 합니다. 동료들도 자신들을 대표팀의 구심점으로 생각하는 만큼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줘야죠. 특히 유럽 등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심리적인 부분에서는 그들의 역할이 더 큽니다.”
만일 박지성이나 박주영이 부상을 당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지만 만일을 대비한 복안은 있을까.
“예기치 못한 변수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스쿼드 경쟁을 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죠. 선수들도 각자 부상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박지성 아니라 메시나 호날두 같은 천하의 선수도 운동장에 뛸 수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부상당한 선수는 가치가 상실되는 겁니다. 다치면 잊어야죠. 그 선수는 제외시켜 놓고 생각할 겁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