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사장 시절 美웨스팅하우스가 원청업체 당시 피말린 협상… 이번엔 컨소시엄 일원 ‘갑-을 역전’
27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대규모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한 한전 컨소시엄에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하고 있다. 세계적인 발전 설비 건설회사인 웨스팅하우스는 당초 독자적으로 원전 사업에 응찰했으나 1차 심사에서 탈락한 뒤 한전컨소시엄에 합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웨스팅하우스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이 약 30년 전 사장으로 재직하던 현대건설이 하청업자로 웨스팅하우스의 원전 건설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의 원전 18기 중 12기가 이 대통령이 사장 재임 시절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저서 ‘신화는 없다’에서 현대건설 사장으로서 한국에 온 웨스팅하우스 수석부사장과 치열하게 담판을 벌인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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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니 그는 통행금지를 시한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통행금지 시간 전에는 끝나겠지’하는 계산을 했던 것 같다. 시간 끌기 작전에 돌입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나는 숙직실에 지시해 ‘매트리스를 회의실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그는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통행금지 시간을 넘기면 오히려 자기가 불리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결국 우리가 원하던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오후 11시 50분. 열네 시간에 걸친 담판이었다.”
이번 수주에선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참모진과의 회의에서 당시 순간을 술회하며 “기술이 없어 힘겹고 설움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당당하게 선진기술로 세계에 진출하는 원전수출국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아부다비=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만세! 해냈다” 수주戰 사령부 ‘워룸’ 환호성
컨소시엄 직원 100여명
작년부터 한전 지하서 밤새워▼
원전 수주 확정 소식이 전해진 27일 오후 7시 15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지하 2층 ‘워룸’에서 한전 원자력사업처 UAE사업팀이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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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워룸에서 한전,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컨소시엄 참여 기업 직원 100여 명은 지난해 12월부터 1년 동안 ‘총성 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보안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별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지하 워룸에서 직원들은 쉴 새 없이 UAE로 전화를 걸고 e메일을 보냈다. UAE 측에서 추가 자료를 요청할 때 마감시간을 급박하게 설정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막판 한 달간은 주말까지 반납해야 했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0월. 조성기 원자력사업처 차장은 “협상 과정에서 10월부터 UAE 측 요구가 많아지는 등 우리가 수주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번 수주는 한국 원자력이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지역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