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9년 전 사고 후 병원에서 맞았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꼭 퇴원해서 집에 가자고 다짐했지만 의료파업으로 수술은 계속 미뤄졌다. 이식했던 피부가 녹아내리고, 여덟 개의 손가락도 절단해야 했고, 나는 여전히 얼굴에 피부 대신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수 없는 정말 암담한 상황이었다. 내일을 꿈꾸기에는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았고, 따뜻한 병실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지만 어느 해 겨울보다 추운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 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몸 담아왔던 성가대의 대원 스무 명이 병실을 찾아온 것이다. 한 친구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빌려 입고 빨간 주머니에 선물을 가득 담아 와서는 비좁은 병실에 다닥다닥 붙어 서서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며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손을 움직일 수 없던 나를 위해 오빠는 내 시선이 닿는 벽에 카드를 모두 붙여주었다. 선물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에 내가 받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잃은 채로 얼굴도 없이 누워 있었지만 내게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전해 준 사랑이 있었다. 눈이 감기지 않아 24시간 눈을 뜨고 지내야 했던 그 시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카드들은 내게 속삭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고. 너는 사랑받고 있다고. 그러니 이겨낼 수 있다고.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여러분도 오늘,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희망이 되길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이 희망이니깐. 당신이 희망이니깐.
<이지선 미국 뉴욕에서, 푸르메재단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