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쇄빙선 아라온호 오늘 남극으로 출항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지만 최단거리를 택하기보다 얼음이 적은 지역을 선택해 항로를 정한다. 사진 제공 극지연구소
미리 보는 아라온호 항해일지
《18일 인천항을 떠나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21일의 항해를 거쳐 1월 7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항에 도착한다. 남극 탐사의 보급기지인 이곳에서 아라온호는 실제 임무를 시작한다. 극지연구소의 도움으로 아라온호의 항해일지를 미리 구성해 봤다.》
탐사 - 비상탈출용 헬기 2대 싣고 항해
○ 2010년 1월 12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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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5.5km이상 달리며 쇄빙능력 시험
○ 1월 25일 남극 케이프벅스
케이프벅스에 도착한 아라온호는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이곳이 남극기지 후보지로 적당한지 정밀 조사하고 아라온호의 쇄빙능력을 실제로 시험해야 한다. 1988년 남극대륙 서북쪽 킹조지 섬에 세운 세종기지는 ‘섬에 세운 기지’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대륙에 기지를 세워야 빙하, 천문우주, 대기, 운석 등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 극지연 대륙기지추진건설위원회 정경호 책임연구원은 “케이프벅스는 주 연구대상인 기후변화가 심하고 식수를 얻을 수 있는 커다란 호수가 주변에 있어 가장 유리한 여건”이라며 “특히 주변에 다른 나라의 기지가 없어 우리나라 고유의 연구를 진행하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아라온호는 얼음을 부수며 항해하는 쇄빙능력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아라온호가 갖춰야 할 기준은 ‘PL10’으로 1m 두께의 얼음을 3노트(약 시속 5.5km)로 항해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1m 두께의 얼음을 깨지는 않고 70cm 두께의 얼음을 깨며 쇄빙항해 능력을 계산한다. 남상헌 실장은 “애초 설계한 기준에 못 미치면 엔진과 선체를 개조해야 한다”며 “아라온호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험”이라고 강조했다.
“레이더 쓰면 얼음 두께 미리 알아”
○ 2월 8일 테라노바베이
아라온호는 얼음이 적은 해역을 따라 4일간 항해해 테라노바베이에 도달한다. 이곳은 제2남극기지의 2차 후보지다. 아라온호는 4일 동안 이곳을 정밀 조사하고 본격적으로 쇄빙항해 훈련을 시작한다. 쇄빙항해 훈련에서는 러시아 얼음전문가가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할 예정이다. 이들은 직접 얼음을 채취해 두께와 빙질을 살핀다. 배가 얼음을 깨고 지나갈 수 있는지 판단해 항로를 설정하기 위해서다. 극지연 이주한 연구원은 이곳에서 저주파를 사용하는 ‘얼음 레이더’를 이용해 얼음의 두께와 질을 측정하는 실험을 한다. 이 연구원은 “얼음 레이더를 활용하면 러시아 전문가들처럼 직접 깨지 않아도 얼음의 두께를 알 수 있다”며 “향후 인공위성의 얼음 레이더를 이용해 항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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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0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40일에 가까운 항해를 마친 아라온호는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 앞선 1차 항해에서 후보지에 대해 만족스러운 조사 결과를 얻으면 아라온호의 첫 임무는 끝난다. 그러나 후보지역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남극대륙 동남쪽에 있는 엔더비랜드 지역을 추가로 탐사해야 한다. 왕복하는 데 34일이나 걸리는 2차 항해다. 김예동 극지연 대륙기지추진위 위원장은 “현재의 세종기지보다 조금 작은 제2기지를 2014년까지 남극대륙에 세울 계획”이라며 “대륙기지와 쇄빙연구선이 우리나라가 남극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얼음에 갇혔을때 어떻게 빠져나오나
배 좌우로 흔들어 얼음 와사삭
얼음 위 올라타 무게로 깨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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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출항하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는 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전진할 수 있는 쇄빙항해 능력을 갖췄다. 사진 속 다른 쇄빙선처럼 얼음이 떠다니는 바다 정도는 쉽게 지날 수 있어 극지 연구가 더욱 쉬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배 전체로 밀어붙여 깨기에는 얼음이 너무 두꺼울 경우 아라온호는 직접 얼음 위에 올라타 육중한 무게로 눌러 깨뜨린다. 아라온호 바닥에는 물탱크 여러 개가 연결돼 있다. 먼저 물탱크 속의 물을 배 뒤로 보내 아라온호의 뱃머리를 들어 얼음에 올라탄다. 이어 물을 다시 앞으로 보내 배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겨 얼음을 짓눌러 깨뜨린다.
항로를 잘못 설정해 앞부분에 깨기 힘든 얼음이 있을 때는 자동차가 후진하듯 뒤로 안전하게 빠져나온다. 아라온호의 아랫부분에는 앞뒤에 2개씩 모두 4개의 추진 장치가 있다. 뒤쪽 추진 장치를 180도 돌리면 전진할 때와 같은 힘으로 후진할 수 있다. 앞쪽과 마찬가지로 뒤쪽도 40mm 두께의 강철판이 있어 쇄빙항해가 가능하다.
쇄빙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제자리에 정박해 있는 동안 깨뜨렸던 주변의 얼음이 다시 얼어붙어 배가 옴짝달싹 못할 때다. 아라온호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제자리에서 배를 좌우로 흔들어 주는 ‘횡경사 장치’를 달고 있다. 이 장치를 가동하면 배가 좌우로 3.5도씩 요동쳐 달라붙은 얼음을 깨뜨린다. 이렇게 깬 얼음을 배 아래에 달린 추진 장치를 이용해 강하게 불어내면 배가 움직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 남상헌 극지운영실장은 “전기로 움직이는 저진동, 고출력 추진 장치가 아라온호의 핵심부품”이라면서 “이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아라온호에는 진동에 민감한 정밀 센서가 달린 연구 장비가 많다. 출력이 높지만 진동이 심한 일반 엔진을 사용하면 ‘움직이는 연구선’의 기능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로 가동하는 추진 장치를 만든 뒤에는 아라온호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뒷부분 추진 장치를 360도 회전할 수 있게 되면서 배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 수도 있고, 얼음에 갇혔을 때 빠져나오는 기술도 갖추게 됐다. 남 실장은 “아라온호는 얼음을 깨고 들어가 제자리에서 조사를 하고 나오는 임무가 잦을 것”이라며 “항해와 정박 조사가 모두 가능한 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