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이태원 살인사건’ 무죄 석방 에드워드 리 언론 첫 인터뷰
패터슨 살인장면 직접 목격… 잡히면 사형당할까 두려워
미성년자인 나를 범인 몰아… 만나면 “그러지 말라” 말할것
무죄 풀려나자 학생들 시위… 한국 너무싫어 미국 건너가
영화는 두려워서 보지않아… 유족 억울함 풀어드릴 것
“저, 에드워드 리인데요. ‘이태원 살인사건’ 기사를 쓴 기자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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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한 장면. 극중에서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재미교포 역을 맡은 영화배우 신승환(왼쪽)이 면회 온 아버지에게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기자는 곧바로 그와 통화했고 오후 6시 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언론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
미군 부대 학교를 같이 다니며 알게 된 사이인 리 씨와 아서 패터슨 씨(31)는 사건 당시 서로에게 살인 혐의를 떠넘겼다. 검찰은 고심 끝에 리 씨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 씨를 증거인멸 및 흉기소지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1999년 9월 3일 대법원은 리 씨에게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고, 복역 중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패터슨 씨는 리 씨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 열흘 전인 8월 24일 미국으로 떠났다. 최근 법무부는 패터슨 씨가 유력한 살인용의자라는 검찰의 의견에 따라 올해 안에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할 방침이다.
리 씨는 “검찰이 패터슨을 미국 정부로부터 넘겨받아 재수사하면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는 나에게 살인 혐의를 씌워 기소한 검찰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크다”면서도 “재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진실을 밝히고 조 씨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죄로 풀려난 뒤 유가족들의 슬픔을 어떻게 달래줄까 고민했지만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도 ‘내가 조 씨를 죽였다’고 인정하는 행동이 될까 봐 망설였다”며 “어쨌든 내가 그 자리(사건 현장)에 있었던 만큼 유가족을 만난다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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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으로 당시 대학입학을 준비하다 일시 귀국했던 리 씨는 조 씨가 살해될 때 친구 패터슨 씨와 함께 사건 현장인 비좁은 화장실에 있었다. 두 사람만이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셈. 리 씨의 진술에 따라 그날 밤의 일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늦게 도착한 리 씨는 잠시 후 배가 고파 패터슨 씨 등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아래층 가게로 내려갔다. 거기서 칼을 꺼내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패터슨 씨가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따라와 봐”라고 해서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서 술에 취한 조 씨가 두 사람을 흘끗 째려봤다. 그 순간 동작이 재빠른 패터슨 씨가 갑자기 조 씨의 몸을 흉기로 찌르기 시작했고, 리 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피가 솟구쳐 리 씨의 옷에 스프레이처럼 뿌려졌다. 가까이 서 있던 패터슨 씨는 옷이 피로 흠뻑 젖었다.
조 씨가 쓰러지자 패터슨 씨는 리 씨의 어깨를 툭 부딪치며 화장실에서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리 씨는 잠시 후 위층으로 올라가 한 친구에게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고 털어놨다. 그 후 택시를 타고 다른 친구의 집으로 간 리 씨는 그제야 정신이 들면서 먹은 걸 모두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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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기다리며 법정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제가 패터슨에게 ‘이제 그만 솔직히 얘기하라’고 했더니 패터슨이 ‘네가 죽였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친구의 의리 때문에 참았는데 그때부터 열이 확 받아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어요. 또 한 번은 항소심 진행 중에 변호사님이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줄이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제가 ‘난 안 죽였는데 왜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난리를 쳤죠.”
○ “한국이 싫고 무서웠다”
1998년 9월 30일 서울고법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리 씨가 석방되자 H대 학생들은 거리 시위를 벌였다. ‘조 씨가 죽었는데 아무도 처벌받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듬해 수도권의 한 대학을 다니다 한국을 떠났다. 리 씨는 “한국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죽이려 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년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사업을 도와 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2002년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2003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은 여섯 살배기 아들이 있다.
리 씨는 “3년 전 아버지가 억울한 사정으로 사업에 실패하고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내가 갇혀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쏟은 부정(父情)을 생각하면 이럴 때 아버지를 돕지 못하고 계속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최근 상영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또다시 살인범으로 그려졌을까 두려워서다. 언론과 영화사의 접촉도 모두 피했다고 한다. 세 시간가량 인터뷰하는 도중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는 뉴스를 본 지인들의 전화였다.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