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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18세기 조선 중하급 장교 송규빈이 쓴 병서 ‘풍천유향’

입력 | 2009-12-05 03:00:00

나무城 얼음城 솜이불방벽 등 장애물 구상
기발한 아이디어지만 세상 변화에는 뒤져




18세기 조선에 송규빈(宋奎斌)이란 무관이 살았다. 그는 83세이던 1778년(정조 2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모아 ‘풍천유향(風泉遺響)’이라는 병서를 편찬했다. 재미있는 것은 송규빈이 고위 장성이나 행정가가 아닌 중하급 장교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이 병서를 펴낸 사례는 매우 드물다.

송규빈은 30여 년간 전국의 군사 요충지에서 군관으로 일했다. 그는 특히 토목 공사나 진지 구축 공사에 일가견이 있었다. 아울러 새 근무지에 부임할 때마다 지형을 살피고, 거기서 벌어진 전사를 되새기며, 전술과 무기를 검토한 뒤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송규빈이 내놓은 아이디어에는 나무성(城)과 얼음성, 솜이불 방벽 등이 있다. 나무성은 북방민족이 우리나라를 침공할 때 반드시 거치는 길에 나무를 빽빽이 심어 기병의 이동을 막자는 생각이었다.

얼음성은 겨울에 강의 얼음을 잘라 만드는 장애물이다. 쌓은 얼음에 물을 부어 굳히면 강도가 매우 높아진다. 송규빈은 적이 강 위의 얼음성에 막혀 있을 때, 매복한 포병들이 일제 사격을 하면 큰 전과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솜이불 작전은 민가의 이불을 대량으로 징발해 연결하고, 이를 나무를 이용해서 방벽처럼 쭉 걸어놓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물을 뿌리고, 병사들이 그 아래에 엎드리면 훌륭한 차탄막이 된다. 군관으로 병사들과 함께 야전에서 많이 생활했기 때문인지 송규빈은 이렇게 손쉽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강했다.

송규빈의 아이디어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치열한 문제의식의 소산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에서 송규빈처럼 끊임없이 묻고, 문제를 지적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고치려고 노력해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나 보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송규빈이 말 많고 불평불만에 가득 찬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이다. 좌절한 그는 자신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송규빈의 불행에는 또 다른 이유, 사실은 더욱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송규빈이 실무 경험은 많았지만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고, 조선의 쇄국 정책 때문에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지고, 온 세계에서 사용한 무기라 기원도 알 수 없는 검차(수레에 방패를 붙이고, 앞에 창을 꽂아놓은 무기)와 11세기에 중국에서 발명한 신기전(화약의 힘으로 날리는 화살)이 조선에만 있다고 믿었다.

나무성, 얼음성, 솜이불 방벽도 돋보이는 아이디어 같지만 18세기의 군대를 막기에는 어림없었다. 조금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나폴레옹 군대는 1812년 통조림을 먹고, 야전 텐트에서 자면서 단 4개월 만에 프랑스에서 모스크바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그들은 이미 솜이불과 얼음 무더기쯤은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는 소총과 대포는 물론이고 20세기의 화력으로도 파괴하기 어려운 요새 건축 기술을 보유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려는 송규빈의 태도는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이런 미덕만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없다. 특히 주변 환경의 변화 양상을 잘 모르고 최신 지식을 흡수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태도를 갖고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환경 변화에 둔감한 조직이 근면성, 성실성, 몰입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yhkmyy@hanmail.net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6호(2009년 12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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