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아프가니스탄 파병. 정부가 아프간에 국군부대를 파견한다는 방침을 밝힌 후 여러 주가 지났지만 여론은 아직 잠잠하다. 2004년 이라크에 병력 3000여 명을 보낼 때와는 달리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에서 과도한 단순화와 이상론에 치우친 파병비판론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당시 수백 개에 이르는 진보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파병반대운동을 전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들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던 일과는 대조적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한 관망의 분위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미 국군 해외파병이라는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지난 몇 년 사이에 현실주의적 대외관이 널리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
대외 리스크 가장 큰 아프간 파병
높은 리스크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파병의 궁극적 결정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까지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지 않았다. 국방장관이 얼마 전 파병에 따르는 위험을 언급했을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04년 파병이나 지난해 촛불시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늘날 우리의 대외정책은 대통령과 여론이라는 양대 축이 주도하는 2차원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중간에 서 있는 국회와 여당의 역할은 부차적일 뿐 결정적 순간이 오면 결국은 대통령과 여론만이 직접 마주치게 된다. 파병동의안의 형식적 집행자는 의원이지만 실질적 책임은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 이제라도 단순한 한미동맹론을 넘어서 아프간-파키스탄 지역이 우리에게 갖는 정치적 의미,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21세기 ‘신(新)그레이트 게임’의 구조를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와 같이 정책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진지한 대화가 있었는가의 문제였다.
다음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아프간 파병이 당장 눈앞에 닥칠 수 있는 전략적 설득의 문제라면 한미 FTA 비준 문제는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는, 하지만 결단을 기다리는 역사적 이슈이다. 진보 성향의 노 전 대통령이 미국과 FTA를 추진했던 뜻과 안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제통합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세력을 한반도에 계속 연계해두고 나아가 동아시아 FTA 네트워크(한일 FTA, 한중 FTA)의 디딤돌로 삼으려 했던 비전은 현실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시각을 통해서 이룬 중대한 선택이었다. 글로벌 코리아를 브랜드로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라면 한미 FTA 비준을 마냥 서랍 속에 넣어 둘 일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 비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퇴임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정부가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종반이었던 2007년 가을이었다. 국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했던 대통합민주신당(2008년에 현재의 민주당으로 개명한 바 있는)은 동의안을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비준 동의안이 수년째 표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에 국회 다수당인 여당이 비준을 지연시킨 것은 단지 이념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당 의원들이 비준을 가로막은 데에는 이념성향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과의 불화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연정론, 여당 의원의 집단 탈당과 복잡하기 그지없는 신당 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여당은 파트너십을 포기했다. 한미 FTA는 이 같은 내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한중일 FTA 디딤돌, 한미 FTA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