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合을 주자는 糾合(규합)으로 보았다. 糾는 督責(독책)의 督과 통하며, 주나라 천자를 존경해야 할 책임을 따진다는 뜻이다. 옛 주석은 九를 아홉의 횟수로 보았다. 그런데 ‘사기’에 보면 환공이 ‘寡人(과인)은 兵車로 모인 것이 세 번, 乘車(승거)로 모인 것이 여섯 번이었다’고 했으나 ‘管子(관자)’에서는 ‘兵車로 모인 것이 여섯 번, 乘車로 모인 것이 세 번이었다’고 했다. 병거로 모임은 무력의 시위, 승거로 모임은 평화의 회합을 가리킨다. ‘춘추곡량전’에서는 노나라 莊公(장공) 27년에 제후들이 衣裳(의상)으로 모인 것이 열한 번, 兵車로 모인 것이 네 번이라 했다. 문헌마다 다르므로 九를 횟수로 보기는 어렵다.
管仲之力의 力은 功績(공적)이란 뜻이다. 국가 사이의 평화스러운 회합을 衣裳之會(의상지회)라고 하는데, 관중의 공적은 무력 시위가 아니라 의상지회를 이루어낸 데 있다. 如其仁은 ‘누가 그 어짊만 하겠는가’라고 하여, 관중의 어짊을 칭송한 말이다. 단, 군주를 위해 殉死한 召忽(소홀)의 절의와 관중의 공적을 비교해서, ‘소홀이 어찌 관중의 어짊에 미칠 것인가’라고 풀이하거나 ‘관중이 소홀의 어짊과 같도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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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