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나의 삶 나의 길]‘愛人敬天’ 도전 40년

입력 | 2009-10-31 03:00:00

<47>외국어 배우는 회장님
글로벌 경제시대 외국어는 필수
영어-일본어 외에 중국어도 공부
세상 바꾸려면 일단 소통이 돼야




 

장영신 회장이 1984년 방한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장 회장은 1세대 경영인 가운데는 드물게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 일본어 중국어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내년 하반기 발효를 목표로 추진하는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보노라면 한창 회사 일로 바빴던 1970, 80년대가 생각난다. 당시 유럽공동체(EC)가 과연 통합을 이뤄낼까 미심쩍었지만 지금 EU는 통합의 마지막 단계인 정치 통합까지 눈앞에 두면서 지역 통합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요즘 지역 경제블록을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 물자와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FTA가 잇따른다. 우리나라는 칠레 싱가포르와 FTA를 발효했고 미국 EU 인도와는 발효를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페루와도 협상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과도 검토 단계에 있다.

이런 경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외국어가 더욱 긴요한 시대가 됐다. 나는 연초의 신년사나 1년에 한 번쯤 참여하는 그룹조회에서 젊은 직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세계인과 더불어 살면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넓게 보고 풍부하게 살며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라도 세계인이 많이 쓰는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게 내 소신이다.

나는 외국어를 일찍 접했다. 1943년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일본어를 배웠다. 이후 중고교생 시절부터 미국 유학생활을 끝낼 때까지 필사적으로 익혔던 영어는 지금도 자신 있다. 중국어도 말하는 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정도다. 고교 때 배웠던 독일어와 함께 프랑스어도 조금은 한다.

외국어를 공부한 것은 외국인과의 소통을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일본과 합작사를 설립하면서 초등학생 이후 손놓고 있던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다시 배웠다. 바쁜 업무 중에도 매주 2, 3번 공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말을 배우다 보면 그들의 문화와 행동방식도 알 수 있다.

일본어를 배우면서 사적으로 소중한 인연도 생겼다. 일본 이토추(伊藤忠)상사 한국대표의 부인 이와나리 하루요 씨다. 미국 뉴욕에 살았던 그녀는 영어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자격증이 있는 수준 높은 선생님이었다. 이와나리 씨에게 이른 아침에 일본어를 배웠는데 그녀는 친화력이 뛰어나고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한국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아침 일찍 만들어 오기도 했다.

영어는 미국 유학시절 익혔는데 한국에 대한 향수를 잊기 위해 미국 친구와 자주 교류하면서 표현력이 늘었다. 요즘 미국의 젊은 세대가 쓰는 표현은 선뜻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외국어 중에선 영어가 가장 편하다. 중요한 업무나 공식행사 등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할 때 일본인과도 일본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일본인은 대체로 영어에 서투르지만 웬만한 기업 간부는 영어를 잘하는 경우가 많아 영어로 대화하는 게 쉬웠다.

애경그룹 화학 계열사가 중국에 진출하면서 시작한 중국어 공부도 3년이 넘었다. 매주 두 차례 전문 강사를 초빙해 공부한다. 신문의 중국어 난을 오려 두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본다. 수년 동안 치료를 받기 위해 매달 홍콩을 방문했는데 이렇게 익힌 중국어는 병원에 갈 때마다 유용하게 썼다. 내 전담 의사가 중국 북쪽 출신이어서 영어를 할 줄 몰라 그들이 사용하는 만다린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때 공부한 보람을 느꼈다. 최근에도 중국 합작사 대표가 우리 회사를 방문하면 공식적인 업무 협의는 통역이 붙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다 알아들을 정도다. 더 유창하게 중국어를 하고 싶어 여전히 중국어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다.

고교시절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조금씩 공부를 했다. ‘이히 리베 디히’라는 노래를 아직도 외워 부른다. 말과 말이 모여 소통이 되고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 사람은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많다.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더 넓은 세상을 품기 위해서라도 외국어를 최소한 하나 이상은 마스터했으면 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