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남북정상회담’ 비밀 접촉DJ조문단 제안 계기로 접촉 시작… 美에 알리고 협의그동안 강조한 투명성 원칙 무색… 靑 “특수성 감안을”
이번 접촉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인 8월 21일 서울을 방문한 북한 조문단을 통해 북측이 제안해온 것을 계기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 후 미국 정부에도 남북 간의 접촉 준비 사실을 알리고 협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접촉은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수차례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가 실제로 행동을 취했다는 의미가 있다. 접촉 의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위한 ‘물꼬 트기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 대통령이 22일 훈 센 캄보디아 총리와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최근 두 차례 “북한도 (한국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한 ‘그랜드 바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동안의 물밑 논의에 근거한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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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접촉의 전후 과정은 그간 정부가 밝혀온 원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남측 대표는 당국자가 아닌 이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정치인 또는 민간 인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사용되던 비선(秘線)과 다를 게 없다. 또 정부 당국자들은 접촉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주무 책임자인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3일까지도 “아는 것이 없다”고 일관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이 대통령이 진짜 비선을 동원했거나, 아니면 당국자들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낮은 단계의 실무 접촉까지 다 공개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반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점에 정상회담이 필요한지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도 아닌 상태에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남한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1, 2년 동안 비방과 무력시위를 한 뒤 정상회담을 미끼로 손을 내밀고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북한의 오랜 생존 수법으로, 남한의 권력자들은 인기 관리와 정권 연장 등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이 내미는 손을 잡아왔다”며 “현 정부는 정치쇼를 하듯이 정상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자칫 과거의 잘못된 패턴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