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1가에서 4가까지 대로변 건물 뒤편을 동서로 연결하는 좁은 골목길은 조선시대부터 피맛골로 불렸다. 말(馬)이나 가마를 타고 종로를 지나가는 양반들을 피(避)해서 민초들이 걸어 다닌 길이라는 뜻이다. 피맛골에는 보부상이나 서민들이 허기를 달래고 목을 축이기에 제격인 국밥집과 목로주점이 즐비했다. 지금의 피맛골은 6·25전쟁 이후 새로 조성된 것이다. 나이 든 세대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피맛골에서 동료 친구들과 어울려 연탄불에 구운 생선이나 빈대떡 또는 파전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00년대 초부터 종로 일대가 본격 재개발되면서 서민의 애환이 깃든 피맛골이 사라져가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1층 홍살문에 걸려 있는 ‘피맛골’이란 나무 간판은 그 아쉬움의 징표 같다. 재개발 건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피맛골 식당들도 꽤 있지만 옛 정취나 세월의 맛을 느끼기는 힘들어졌다. 비싼 임차료 때문에 음식값은 올랐고 세련된 실내 장식에서는 예전의 푸근했던 정과 분위기는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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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