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All men are created equal).” 미국 독립선언문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최근 이 표현은 미국에서 이렇게 변형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비트는 평등하게 태어났다(All bits are created equal).” 사람이 피부색과 종교에 관계없이 ‘천부인권’을 갖고 있듯, 한 번 제작된 디지털 콘텐츠도 이 콘텐츠가 서비스되는 통신사의 통신망에 관계없이 대접받을 ‘비트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출장으로 해외 여러 도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장 기간 유용하게 사용했던 건 제가 한국에서 쓰던 ‘블랙베리’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처음 가는 외국 도시를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구글의 휴대전화용 지도 서비스 덕분에 길도 헤매지 않고, 대중교통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었죠. 한국에서 온 e메일을 확인하는 건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도시 정보도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은 한국의 SK텔레콤, KT와 같은 이동통신사 통신망에 접속하지 않고도 컴퓨터처럼 ‘무선 랜(WiFi)’ 서비스에 접속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기기였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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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국내에서도 대형 통신사가 이처럼 임의로 특정 콘텐츠를 가려서 서비스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콘텐츠는 똑같이 ‘0’과 ‘1’의 숫자로 구성된 비트(bit)의 모음인데 제한되는 콘텐츠는 품질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통신사의 이해에 따라 차별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비트의 권리를 반대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신사가 콘텐츠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건 극단적으로 말하면 스팸메일이나 컴퓨터 바이러스가 통신망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냥 놔두란 소리와 다를 바 없단 겁니다.
제가 스마트폰에서 결국 구글의 서비스만을 사용했듯 독점적 강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통신사에만 중립을 지키라고 얘기하는 건 무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통신사의 힘이 강해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원천적으로 막는 상황이 된다면 사회 전체의 편익에 해가 되지 않을까요.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