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드(미국드라마)가 큰 인기였다. “하트군?” 낮은 음성으로 학생 이름을 부르던 킹 스피리트 교수와 당황해하는 로스쿨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수가 학생을 상대로 묻고 또 물어 학생이 스스로 이치를 깨닫게 하는 소위 소크라테스식 교육방식에 매료되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해 보는 중고교생이 많았다. 이 드라마에 영향을 받아 대학 진학 때 법대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외 없이 드라마와 전혀 다른 법학 교육의 현실에 실망했다.
30년이 흘렀지만 이 드라마는 중년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 있다. 올해 3월 법학전문대학원, 소위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중고교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은 자녀가 미드 속 로스쿨에서 소크라테스식 교육을 받는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법학전문대학원은 멀고 험한 길을 간 후에야 드라마 속 모습과 비슷해지리라고 본다. 가장 큰 장애는 사법시험이다. 로스쿨 하면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은 사법시험의 연장선이다.
현재 논의 중인 변호사시험을 보면 기준이 사법시험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이 사법시험 출신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변호사시험은 사법시험보다 어려워야 한다고 믿는 법조인이 많다. 하지만 로스쿨은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 방식으로 법조인을 키우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다. 만약 변호사시험이 범위가 넓고 문제가 어려워 탈락자를 양산한다면 법학전문대학원 3년은 ‘시험’을 위한 과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로스쿨의 원산지, 미국 변호사시험은 기본 능력만 평가한다.
사법연수원 vs 법학전문대학원
더욱 큰 문제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되는 ‘이원적 양성제도’에 있다. 올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이 법조인으로 배출되는 시기는 2012년이다. 입학자 2000명 중 중도 탈락과 변호사시험 불합격으로 몇 명이 법조인이 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 외에 1000명 안팎의 법조인이 사법연수원에서 배출된다는 점이다. 올해 사법시험 합격자는 작년과 동일하게 1000명 내외다. 이들은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실무연수를 받고 2012년 법조인이 된다. 사법시험은 2017년까지 존속한다. 합격자 수는 단계적으로 줄겠지만 2020년까지 사법연수원에서 법조인이 배출된다. 그때까지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법조인들은 사법연수원 출신과 계속 비교될 것이다.
어느 쪽이 선호될까. 사법연수원 출신으로 구성된 법조계가 사법연수원 출신자를 더 선호할 것은 분명하다. 법원은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을 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않을 계획이고, 검찰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요즘도 변호사 취업이 어렵거니와 2012년 이후엔 변호사 실업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이 취업에서 더 고전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법학전문대학원을 왜 도입했느냐는 비난이 고조될지 모른다.
그러나 로스쿨의 도입은 분명히 바람직한 방향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는데 사회와 담쌓고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이라는 관료형 교육제도에서 2년간 집단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법조인을 양성할 수 없다는 판단은 옳다. 사법시험제도와 로스쿨제도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데 둘을 비교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이 잘못인 것이다. 로스쿨제도는 법조인은 장기간 ‘양성’되는 것이라는 사고에 기초한다. 로스쿨을 졸업했다고 바로 법조인으로서 능력이 완성된다고 보지 않는다. 반면 사법시험제는 선발과 사법연수원의 실무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완성’시킨다고 본다. 사법연수원 출신과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을 사회진출 시점에서 비교하면 사법연수원 출신의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법조인 양성 일원화 시급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법연수원 출신보다 더 훌륭한 법조인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 로스쿨의 특징이다. 법조인이라고 모든 법을 아는 것이 아니고, 법조인이라고 모두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도입한 것이 로스쿨제도다.
지금부터라도 법학전문대학원이 제 궤도에 오르도록 도와줘야 한다. 최대한 빨리 법조인 양성을 일원화해야 한다. 사법시험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이 아닌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단기 연수를 받도록 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종 변호사시험은 법조인의 기본 자질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대학별 입학정원제는 재조정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는 종합적인 점검을 필요로 한다.
문재완 객원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oonjaew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