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 묘량면에 자리한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은 운동권 출신인 세 쌍의 젊은 부부가 새로운 농촌 생활공동체를 꿈꾸는 터전이다. 6일 텃밭에서 재배한 상추, 참외, 호박 등을 들고 여민동락을 찾은 노인들이 “원장님 사랑해요”라며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한가운데 서서 채소 바구니를 건네받는 이가 강위원 여민동락 원장. 영광=정승호 기자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의 찻집 칠판에 있는 안내문.
한총련 前핵심멤버 3인방의 ‘귀거래사’
전남 영광군에 ‘여민동락’ 세워 똥걸레 빨고 목욕시켜 드리고…“이념 굴레 벗고 삶속 실천 노력”
“아따, 엄니! 줄을 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당께요.”
6일 오후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마을. 농협 뒤편 실내 게이트볼장이 무료 안과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로 북적였다. 늦게 와 번호표를 받지 못한 70대 할머니가 슬그머니 ‘새치기’를 했다. 노인들을 안내하던 강위원 씨(39)가 웃으며 “줄 선 엄니들 성낸께(화를 내니까) 얼른 뒤로 갑시다잉∼”이라며 할머니 손을 끌었다. 강 씨는 묘량면 노인들의 손발 노릇을 하는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원장이다.
묘량면은 영광군 11개 읍면 가운데 가장 면세(面勢)가 약하고 인구도 적다. 여민동락은 이처럼 가장 후미진 곳에 둥지를 틀고 문을 연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독특한 이력과 운영 철학 때문이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강 씨는 1990년대 학생운동의 정점이던 1997년 5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을 지낸 ‘운동권의 핵심 멤버’였다. 센터 사무국장인 이영훈 씨(33)는 2002년 한신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이 씨의 부인 이민희 씨(35)는 2003년 한총련 정책위원장을 지냈다. 권혁범 지역복지팀장(36)은 1997년 전남대 총학생회 문화국장을, 부인 김강선 씨(34)는 단과대 부학생회장을 맡았다. 세 부부 가운데 유일한 비운동권은 강 원장의 아내 양효라 씨(35)다.
한때 ‘골수 주사파’로 불리던 강 씨가 사회운동이나 정치를 함께하자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귀향을 결심한 것은 ‘복지가 곧 사회운동’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4년 2개월 동안 복역한 뒤 2001년 출소한 그는 노인복지를 공부하기 위해 대구에 있는 효경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 아내 양 씨를 만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출소 후 강 씨가 ‘한총련 합법화 운동’을 벌일 때 한총련도 변해야 한다는 데 의기투합했던 운동권 후배들과 ‘농촌에서 희망을 찾자’며 고향 마을에 세운 것이 바로 여민동락이다.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주민 정상수 씨(77)는 “처음에는 솔직히 ‘저놈들이 뭔 꿍꿍이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노인들의 똥걸레를 빨고 마을을 돌며 노인들을 정성껏 보살피는 것을 보고 의심을 버렸다”고 말했다.
이들이 귀농을 결심하면서 세운 원칙이 있다. ‘공경과 나눔으로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에 길벗이 된다’ ‘나랏돈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지갑부터 연다’ ‘농민과 더불어 농사짓고 시골학교에 아이를 보낸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여민동락은 깔끔하고 아담한 건물 2개 동으로 지어졌다. 1개 동은 주민이 모임을 갖거나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수 있는 찻집으로 누구든 공짜다. 자식들에게 거는 전화 요금도 부담스러워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무료로 쓸 수 있는 ‘사랑의 도깨비 전화’도 있다. 나머지 한 동은 나이든 어르신들이 아침에 나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식사를 하고 간단한 치료와 취미활동을 즐기는 곳으로 꾸몄다. 노인들 대신 시장을 봐주고 이동 목욕 서비스도 한다. 세 부부는 마을 교회에서 조손(祖孫)가정 아이 12명에게 영어, 수학, 논술을 가르치는 ‘야학’도 열고 있다. 곧 있으면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도 만든다. 지역 특산물인 모싯잎을 이용해 송편을 만드는 공장을 이달 안에 가동할 예정이다.
관(官)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시설 운영이 힘에 부치지만 전국 곳곳에서 여민동락 곳간을 채워주는 사람이 많아 힘이 솟는다. ‘고향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돈을 보내오는 출향민, 인터넷 카페를 보고 중고 물품을 보내주는 주부들, 짬을 내 찾아주는 자원봉사자 등이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이영훈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고맙다’며 마늘, 콩, 호박, 감자 등을 건네줘 반찬 걱정을 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오해할까 봐 농민회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여민동락의 꿈은 단순한 노인복지센터에 머물지 않는다. 농촌복지를 통해 농촌의 경제와 교육, 문화를 살려 젊은이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드는 것이다.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심훈의 소설 ‘상록수’처럼요.” 한총련 의장이 농촌으로 돌아와 복지공동체를 꿈꾸는 이유다.
영광=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