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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그림자처럼 따르던 아우는 영정으로…

입력 | 2009-07-28 02:50:00


경전철 현장서 일한 형제
살아남은 형은 눈물만…

“내가 일하는 공사장으로 데려 오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어. 같이 내려갔어야 했는데 젊은 나이에 고생만 하고 너무 불쌍해요….”

경기 의정부 경전철 철제구조물 붕괴사고로 동생 조현동 씨(25)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26일 빈소가 마련된 의정부 백병원을 찾아 부산에서 올라온 형 현오 씨(32)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되뇌며 흐느꼈다.

동생에게 현오 씨는 부모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동생 현동 씨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뒤 두 다리로 일어서지 못했다. 가슴 아래쪽이 마비돼 11년을 병상에 누워 지냈다. 어린 현동 씨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나이에 고사리 손으로 어머니 다리를 주물렀다. 그런 어머니마저 현동 씨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욕창으로 숨을 거뒀다. 5년 전부터는 아버지도 몸이 불편해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다.

현오 씨는 부모님의 빈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든든한 형이었다. 두 누나가 출가하고 난 뒤엔 형제 둘뿐이었다. 의정부 경전철 공사 현장에 같이 나갈 땐 회사 숙소에서 같이 먹고 자고 일했다.

동생도 그런 형을 잘 따르고 아버지 요양비에 보탠다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 공부는 포기하고 부지런히 일만 했다.

동생은 형의 소개로 형이 일하는 의정부 경전철 공사 현장에서 갠트리크레인(기중기) 조종사로 일했다. “젊은 나이에 쉽게 돈 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형의 말을 듣고 묵묵히 해 뜨기 전 매일 새벽에 일어나 형과 함께 일터로 향할 뿐이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형은 부산에 있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 잠시 동생과 헤어졌다.

형제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지만 별로 닮지 않았다. 형은 말이 없고 듬직했다. 형은 “동생은 섬세하고 애교가 많고, 잘생긴 외모에 멋 부리기도 좋아했다”며 “돈을 벌면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고종사촌 여동생과 함께 옷가게를 차리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형은 여전히 어깨가 축 처져 있다. 동생 현동 씨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지내온 무게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동생의 영정만 바라봤다. 형 현오 씨는 현동 씨를 화장한 뒤 충북 제천에 묻혀 있는 어머니 곁에 둘 생각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