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각장애인이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음성책자인 ‘데이지(DAISY)’ 도서를 듣고 있다. 데이지 도서는 CD 1장에 2권 정도의 책을 담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점자도서관과 LG상남도서관에서 데이지 도서를 제작해 무료 배포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점자도서관
점자도서관 40년… ‘국립’ 없고 대부분 자원봉사 의존
37곳 도서관 민간서 운영…보유 장서 적고 그나마 중복
복지부 “문화부 담당 업무”, 문화부 “복지부 소관” 맞서
장애인단체 연구원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임종혁 씨(45)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책을 구하는 것이다. 대학시절에도 복지시설에 점자 교재를 신청하면 3개월 후에나 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남들보다 서너 배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도서관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도서관에는 그가 원하는 점자책이나 오디오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도서관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보고 자료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점자도서관 이용률은 0.2%에 불과하다. 연간 일반 공공도서관을 찾는 시각장애인은 관당 249명이다.
시각장애인의 도서관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보유하고 있는 장서가 적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애인 도서자료는 2008년 기준으로 관당 134권으로 9만여 권인 일반 도서자료의 0.1% 수준이다. 대구대 특수교육과 이해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점자도서관은 관당 3400여 권을 보유하고 있다. 점자도서관은 공공도서관에 비해 점자책 오디오책이 많은 편이지만 중복되는 자료가 많고 절반 정도는 아동·문학도서에 편중돼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37개의 점자도서관 중 국립도서관은 한 곳도 없다. 대부분 지역 사회복지시설이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한국점자도서관은 민간 점자도서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고 2008년 기준 5900여 종의 장서를 보유해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지만 일반 도서관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점자책 오디오책은 점자도서관이 제작한다. 문제는 점자도서관에서 점자책을 만드는 것이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책의 원본 파일은 저작권에 묶여 있다는 것. 출판사에서 컴퓨터 파일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입력 봉사자가 책을 점자규정에 맞게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그 뒤 교정을 거쳐 점자로 인쇄하거나 녹음 봉사자가 책을 읽고 녹음해 오디오책으로 만든다. 모든 과정이 자원봉사자가 아니면 이뤄질 수 없다.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장은 “점자책 한 권을 만드는 데 2개월이 걸린다”며 “민간 점자도서관에서 정부 지원도 없이 자원봉사자의 힘으로 어렵게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는 국립·왕립점자도서관이 전국 공공도서관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출판사에서 원본을 제공해 준다. 육 관장은 “우리나라는 모든 점자도서관에서 비슷한 점자책을 만들고 있지만 외국은 네트워크가 잘돼 있어 작업이 중복될 일도 없고 더 많은 책을 빠른 시간에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점자도서관이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부처는 서로 관리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복지부는 14일 발표한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개선계획에서 점자도서관을 24개 정리대상에 포함시켰다. 사회복지시설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적 근거를 삭제하겠다는 것. 점자도서관은 도서관법에 설립 규정 등이 명시돼 있어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으로 되어 있지만 복지부 소관인 지역복지시설과 함께 운영돼 운영주체를 두고 혼란이 있어 왔다. 복지부는 “점자도서관은 도서관이기 때문에 문화부에서 담당할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문화부는 “장애인시설 운영은 복지부 담당이므로 점자도서관도 복지부 소관”이라고 맞서고 있다.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점자도서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고 관리감독 체계를 정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