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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익숙함 깨뜨린 사뭇 다른 낯섦 미지의 땅에서 또다른 나를 찾다

입력 | 2009-05-16 02:54:00


◇ 야생사과/나희덕 지음/148쪽·7000원·창비

등단 20년차의 시인은 ‘난청과 실어증의 나날’을 고백한다. ‘모성적 따뜻함’이 배어난 서정시들로 평단과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온 그이지만, 교사 방송작가 등 생업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 없이 달려온 세월 동안 내면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던 모양이라고. 오랫동안 인내해야 했던 시적 긴장과 글쓰기의 부담감 역시 이유가 됐다. 그래서인지 나희덕 시인의 신작 시집 ‘야생사과’는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낯섦이 엿보인다. 서정시의 익숙한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쓰려는 시인의 지난한 고민, 조금씩 그 해답에 이르는 과정을 이 시집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선이 무서워졌어요 거침없이 달리며 형태와 색채를 뿜어내는 선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사물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다고 할까요 아니면 빛에 대한 난해한 사랑이 생겼다고 할까요 선들이 내지르는 굉음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쇠라의 점묘화’)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것, 이성이나 논리로 따질 수 없는 초월적인 것들은 때로 환상적인 야생의 세계로 표현되기도 한다. 붉은 절벽에서 스며 나온 듯한 영혼들과 돌로 된 아기, 등 뒤에 선 자신이 보이는 장면 등이 주는 인상은 때로 몽환적이거나 기괴하기까지 하다. 시인의 갈등은 ‘벗어나도 벗어나도 내 속에 갇혀 있는 나’(‘존 말코비치 되기’)를 벗어나 이방인,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나를 좀 지워주렴./거리를 향해 창을 열고/안개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안개는 창을 넘는 순간 증발해버렸다…―나를 좀 채워주렴//바다를 향해 열린 창으로/안개가 밀물처럼 스며들었다/안개는 창을 넘는 순간 몸속으로 흘러들었다”(‘심장 속의 두 방’)

이번 시집에는 2007년 하반기 미국 아이오와대의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시인은 “살면서 처음으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생활을 해봤다.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면서 자신을 치유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외국어 환경에 놓이면서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전의 작품들이 삶을 삼키거나 수용하고, 인내하는 모습이었다면 시인은 이제 한계를 벗어나 세상과 부딪치고 소통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삼키는 행위 대신 삼킬 수 없는 것들을 뱉어 내는 힘에 주목하는 것 역시 “폐쇄적인 세계를 벗어나 드넓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고 싶다”는 시인의 변화인 듯하다.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삼킬 수 없는 것들은/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삼킬 수 없는 것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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