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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교과서의 무서움’-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공연

입력 | 2009-05-11 15:50:00


10일 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층 B열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여기서 죽어도 좋아’를 되뇌고 있었다.

지난해 창립 460주년을 맞았다는, 1548년에 창립된 이 최고(最古)의 오케스트라는 조금도 낡지 않은, 최고(最高)의 품격과 단아한 사운드로 청중들을 2시간 동안 붙들어 맸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이날 ‘교과서의 무서움’을 보여 주었다. 이들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교과서였고, R.슈트라우스의 교과서였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의 기민한 지휘 아래 청중들은 현과 관이 쇳물처럼 녹아 뭉치는, 오로지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만이 가능한 신기를 경험했다.

게다가 대편성의 풀 사운드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관현악 대편성으로 작곡한 슈트라우스에게 경의를!

슈트라우스에게 성공과 명예를 가져다 준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 이어 연주된 두 번째 곡은 역시 슈트라우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케’였다(슈트라우스는 작품에 긴 제목을 달 길 좋아했는지도).

협연자는 그리운 이름의 에마누엘 액스였다.

왕년에 바이올린 김영욱, 첼로 요요마와 함께 ‘액스-김-마 트리오’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피아니스트다. 셋 중 맨 뒤에 이름이 붙었던 요요마가 요즘엔 제일 잘 나가고 있지만.

이 곡은 신기하게도 팀파니가 맹활약한다. 팀파니와 피아노가 끊임없이 대화를 해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 팀파니가 둥둥 심장을 울리면, 영롱한 피아노는 그 힘을 받아 혈관을 타고 흘렀다.

액스의 피아노도 끝내줬다. 화려한 손가락 놀리기와 밑도 끝도 없이 두들겨 패는 도끼주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피아노계에 조근조근 속삭이는 액스의 피아노는 오히려 신선하게 들렸다. 참으로 오래 간만에 ‘그래, 피아노는 이런 악기였지’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소리였다. 스스로도 흡족했을까. 사람 좋아 보이는 액스는 두 곡이나 앙코르를 선사해 주었다.

끝 곡은 ‘차라투스트라’. 어둠을 상징하는 더블베이스의 트레몰로와 오르간의 저음. 곧이어 트럼펫이 등장하면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한, 이 위대한 곡의 프롤로그를 들으며 온 몸이 오싹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앉은 것이다. 왜 생전의 슈트라우스가 그토록 이 오케스트라를 총애했는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결코 내지르거나 윽박지르지 않아도 할 말 다 하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신기. 두텁고 유려한 현. 아련한 금관과 뚜렷한 색감의 목관. 이날, 이 멋진 오케스트라는 전통 위에 자신들만의 전설을 쌓아가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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