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인구 13만5000여 명의 작은 도시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공포에 휩싸였다는 소식에 기자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검찰 송치와 함께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 후유증은 상당히 큰 것 같다. 하루 만에 에이즈 검진 신청자가 50명으로 20배나 늘었으니 말이다.
늘 그렇지만 병에 대한 공포감은 질환 자체보다 오해와 편견 때문에 부풀려지기 쉽다.
2003년 봄 중국발(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국민은 ‘실체’도 없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사스는 치료약이 없을 뿐 아니라 걸리면 대부분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사스에 전염되거나 사스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사스에 걸려도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의해 자연적으로 치료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치사율(9.5%)도 소문처럼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포감은 사라졌다.
에이즈는 성 접촉을 여러 번 했다고 해서 감염되기도 힘들거니와 걸렸다고 바로 죽는 치명적인 질환도 아니다. 가령 여성 에이즈 환자와 접촉한 남성의 감염 확률은 0.03∼0.1%다. 성 접촉 대상 남성이 1만 명이라면 그중 3∼10명이라는 뜻이다.
에이즈에 걸린 뒤라도 환자의 평균 수명은 35년 이상이다. 국내에서도 1985년 첫 에이즈 환자로 판명됐던 20대 남성이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 치료제도 20∼30가지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이제 에이즈를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보고 있다. 천형(天刑)이 아니다.
무엇보다 에이즈는 성 접촉, 혈액 등 감염경로가 명확하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예방이 가능하다. 또 기침이나 침 등 호흡기를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를 격리시키거나 수용할 필요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식사나 포옹, 키스를 한다고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
물론 에이즈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관리에 소홀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5000여 명의 에이즈 환자가 다시 도마에 올라서도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에이즈 치료뿐만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죄 없는 환자들’의 정신적인 상처를 달래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가동됐으면 한다.
이진한 교육생활부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