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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44년 나치 ‘자살폭격대’ 제안

입력 | 2009-02-28 03:03:00


한나 라이치(1912∼1979). 그는 세계 최초의 여성 시험비행사로서 숱한 활공 및 비행대회에서 우승했고, 1934년 여성 최고 고도 비행기록을 시작으로 최초로 알프스 산맥을 글라이더로 넘는 등 모두 40여 개의 신기록을 세웠다.

수륙양용기, 헬리콥터, 제트추진비행기, 로켓추진비행기는 물론 미사일의 원형이 된 V-1로켓 등 독일이 개발한 모든 항공기를 시험비행 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많은 종류의 항공기를 조종한 비행사가 됐다.

키 145cm, 몸무게 45kg의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도전정신과 활화산 같은 정열로 가득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비행기를 몰고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비행선교사 훈련을 받아 기장(機長) 자격을 딴 최초의 독일 여성이 된 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모험적 인생을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공군의 시험조종사로 활약하면서 여성 최초로 철십자훈장까지 받으면서 열렬한 나치 숭배자로 변했다.

그는 1944년 2월 28일 베르히스가덴의 산장으로 아돌프 히틀러 총통을 방문해 가미카제식 자살폭격기 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V-1 로켓을 조종사가 탈 수 있도록 개조하고 자원자로 1000명 정도를 모집해 이 ‘나르는 폭탄’에 태워 보내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히틀러는 처음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부대를 만드는 것은 독일의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라이치의 열정적 설명에 그는 “그럼 가능성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라이치는 즉석에서 스스로 자살특공대 첫 자원자로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했다. “저는 ‘인간 글라이더 폭탄’의 조종사로서 자살특공대에 자원입대합니다. 저는 이 임무가 제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라이치의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않았다. 자살특공대를 위해 만들어진 V-1 시험비행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라이치는 자살 직전의 히틀러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 중 하나였다. 1945년 4월 26일 그는 리터 폰 그라임 공군사령관을 태우고 베를린으로 날아가 지하 벙커에서 히틀러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다시 베를린을 빠져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 라이치는 미군에 체포돼 15개월 동안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풀려난 뒤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1979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는 활공을 계속했고 바로 한 해 전에는 여성 최장 글라이더 활공기록을 세웠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